너 내 몸의 반을 먹고/ 나는 내 몸의 반을 먹고/ 우리 게걸스럽게 뜯어 먹으며/ 뻔뻔한 사랑 한번/ 비정한 사랑 한번 해 볼래/ 살점 깨끗이 발라내어 뼈만 골라/ 삼일 낮밤을 푹 고아 몸보신하고/ 남은 반은 색종이로 접어 책갈피 어디쯤/ 종이 냄새 흠뻑 좋은 자리에 꽂아두며/ 아메바처럼 암수 함께한 우리가 되어도 좋고/다시 못 올 세상 악쓰면서/ 그 인연 소중하게 부둥켜안고/ 지켜준다는 약속, 파토내지 않아도 될/ 샴쌍둥이처럼 사랑한번 해 볼래/남편의 노트에는 그날의 프로 포즈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남편의 감성은 늘 내게 들킬만한 거리에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용수철 인형으로 깜짝 프로 포즈라고 기획했지만 약간은 예견되었다. 그러면서 허리우드 액션을 기대하며 바라보면 남편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큰 동작으로 놀라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남편의 만족스런 표정을 보기위해. 물론 남편의 그러려니 하는 이벤트도 나의 만족스런 몸짓으로 서로 윈윈전략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일조하긴 했지만, 그다지 여우같다고 자책하긴 싫었다. 남편은 경품으로 탄 반지를 자신이 해준 것 마냥, 반지의 제왕도 아니면서 반지 낀 내손을 조몰락거렸다. 기분 나쁘진 않았다. 여섯 살 적은 막내 동생의 애교쯤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날, 아프리카에서 프로 포즈를 받아들인 것일까, 내가 네라고 대답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코스요리며 디너쇼에 정신만 쏙 빼놓고 온 느낌, 남편은 그날 이후 칼자루를 쥔 모습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마치 뛰어봐야 벼룩인 것처럼 방사해두고 해가 지면 휘파람 하나로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저 죽일 놈의 자신감을 내비추고 있었다. 가령 친구를 만나러간다는 문자의 답장은 쿨 했다. 가진 돈 마음대로 쓰고 와. 기껏 지갑 안에 오 만원을 넣어주고는. 우린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동거부터 시작했다. 그것이 옳은지 잘못되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같이 있으면 원 플러스원으로 상생의 효과는 만만치 않을듯했다. 원 플러스원이 주는 속셈은 솔직히 뒷전이었다. 낱개로 구입한 것 보다 더 비싸게 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통계를 무시한 채 덥석 카트기에 담았다.그러고 보니 남편과 첫 만남은 이마트매장 앞이었다. 차를 파킹하고 더위에 짓눌린 육신을 에어컨 바람 속에 첨벙 뛰어들기 위해, 서둘러 매장 앞 카트기에 다다랐다. 그때서야 차안에 둔 동전이 생각났다.그늘을 찾아 파킹한 차는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다. 살짝 짜증이 났을 때, 남편이 쇼핑을 끝내고 카트 적재함 설치대에 밀어 넣으려다 내 눈과 마주쳤다. 동전이 없으신가 보죠? 전 쇼핑이 끝났습니다. 카트기 드릴게요. 마치 사막에서 물통을 건네받아 목을 축이는 황송함으로 카트기를 건네받았다. 고맙습니다.나는 기억한다. 천상병시인이 막걸리 한잔을 먹기 위해 만나는 지인에게 백 원만을 외쳤던 천 구백 육 십년대도 아니고 땅에 떨어진 백 원짜리 동전에 애써 허리를 굽히지 않고 지나가는 이천 십 육년에 인연의 고리가 딸깍 채워졌다. 카트기를 건네고 돌아서 가는 남편의 뒷모습은 이제껏 내가 본 남자 중에 남자였다. 저 아름다운 남자의 뒷모습을 백허그하고 싶다는 강렬함에 나는 짜릿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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