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럼틀이 아닐까요.  아니면 시이소? 남편의 눈치를 봤다.  여차하면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를 다 불러서 꼭 정답을 말하겠다는 모범학생처럼.  남편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아, 아니구나. 그네죠? 맞죠?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화나 소설에서 미끄럼틀 아니면 시이소, 그네가 많이 등장하잖아요.  전 구름사다리에 매료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놀이기구를 일일이 가르쳐주고 있을 때, 단박에 저를 사로잡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구름사다리.  어느 동화책의 스토리에서 받은 감동보다 다섯 음절로 된 구름사다리만으로 모험과 고난과 희망이 어우러져 저를 들뜨게 만들더군요.  한 칸 한 칸 올라가기 위해 팔을 뻗고 발로 디뎌가며 내가 다다라지 못한 곳을 향하는 마음이 함께 했다면, 그곳이 구름에 닿을 수 있는 사다리라고 확신이 선다면 이 얼마나 짜릿한 여정이겠습니까. 남편은 감성 주의자였다.  고만한 초등학교 시절 마땅히 지나쳐 버릴 낱말에 민감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저 남자의 입술을 갖고 싶다.  순간적인 생각으로 얼굴이 화끈 거렸다.  놀이터에는 산책을 나오거나 조깅을 나온 몇 사람이 보였다.  평온한 오후였다.  간이의자 주위에 단풍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질풍같은 칠일의 삶이 아쉬운 매미 울음소리도 간혹 들렸다.  사람들은 왜 앞만 보고 걷거나 뛰는지 아십니까?  뒤통수에 눈이 없어서겠죠.  남편은 눈가에 엷은 미소를 띄우며 잠깐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네요.  간단한 정답이 있었군요.  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월을 따라가는 거라고.세월은 꼭 그만큼 우리를 앞질러 흐릅니다.  도도히 굽이쳐 흐르는 세월의 경로를 따라 인간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멈춘다고 멈춰지는 것이 아닙니다.뒤를 돌아보면 살아온 세월이 추억으로 자리를 잡아 삶의 바퀴가 덜컹 거립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거나 뛰는 우리는 인간일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 우리의 할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도 그랬고, 우리의 할머니도 그랬고 어머니도 그런 세월 을 살아온 셈이죠.  딱 한번쯤 엉덩이를 깔고 앉아 두 다리를 뻗어 엉엉 울면서 억지라도 부리고 싶을 그런 시기가 누구에게나 올 겁니다.  그때 주저하지 마시고 눈치 볼 것도 없이 철퍼덕 주저앉아 생 때라도 부려 보세요.  세월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앞 서 달리다가 멈춰진다고 하네요.  생 때를 너무 부리면 볼썽사나워져 세월의 흐름은 빨라집니다.  적당히 서로 피곤하지 않게.  중요합니다.  밑줄 그어 놓으세요.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남편의 말에 동화된 얼굴로 귀를 기울이던 내 얼굴이 지금 보고 싶었다.  휴대폰 액정 거울에 비춰보았다.  구름사다리 그림자가 얼굴을 단락 짓고 있었다.  초면에 너무 무거운 대화를 나누었죠?  남편은 마치 내 존재를 잊고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은 심중을 감추기라도 하듯 서둘러 일어섰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몇 살이세요?어머 나 보다 여섯 살 적은 나이. 남편은 자신보다 여섯 살 많다는 얘기에 옷깃을 여미듯 재킷 지퍼를 약간 올렸다.  그 모습이 더 귀여웠다. 만약에 지금 제가 그 쪽 입술에 뽀뽀를 한다면 괜찮겠는지, 정말 다른 뜻은 없어요.  단지 뽀뽀를 하지 못하면 이불속에서 방바닥을 치며 후회할 것같다는 생각. 뽀뽀할게요.  남편과 첫 뽀뽀는 오후로 넘어가는 햇살아래에서 펼쳐졌다.  하늘은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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