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 입술을 받았다.
촉촉하고 감미로웠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소심하게 다가왔다.
가령 예스, 노를 결정하기 전에 덮친 자신의 입술을 뺄 생각을 않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든지, 한 손은 내 허리 주변에서 어정쩡하게 맴돈다든지 하는 것으로 나의 대시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었다.
놀이터는 구월의 기운을, 향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듯했다.
주변의 식물들은 연녹색에서 이미 변색이 되어 푸르름을 더했다.
벌이며 나비며 잠자리며 자신의 동선을 따라 날아다니는 풍경이 새로웠다.
그만큼 계절이 자리를 잡아 떠날 계절의 흔적을 쓸어내고, 돌아올 계절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남편은 나의 돌발행동에 그다지 거부반응을 하지 않았다.
기가차서 그런지, 타이밍을 놓쳐버린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자신이 취하고 싶었던 액션과 일치한 면도 있으리라.
남편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와서 기습뽀뽀를 했지만 무안해하는 나의 손을 이끌어 옆자리에 앉혔다.
남편은 몇 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질했다.
이럴 때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던데, 이 남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구나. 하긴 입술을 벌리지 않는 순전히 뽀뽀에 지나지 않았지만 담배를 피웠다면 쉽게 알아챘을 법도 했다.
실핏줄이 약간씩 드러난 투명한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핸번을 알고 싶네요. 남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이 순진한 남자의 옆구리를 먼저 찔렀구나.
입가에 엷은 웃음이 그려졌다.애교스런 가을이 내 겨드랑이를 간지럼 먹혔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했다
.
어디에서 어느 시간에 누구를 만날지 모르는 것이 인연의 매력이다.
아니 인연의 끈이 닿을 듯 닿을 듯해도 영원히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인연을 맞이할 준비를 해두는 것이 최선의 마음가짐이다.
그래야만 찾아온 인연이 돌아서지 않는다.용기도 필요하다.오늘 즉흥적인 내 행동에서 위험을 수반할지 몰라도 한번쯤은 시도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물론 아무에게나 내 행동이 진정성으로 비춰지지 않겠지만 최소한 타락된 육체 덩어리로 평가 절하되고 싶진 않다.
남편도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명쾌한 언어를 찾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그러다가 남편이 내 손등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서로의 체온이 전달되면서 전해지는 이 촉감이 참 좋군요.
마치 서로의 경계선을 넘어와서 새롭고도 신비로우며 놀라운 체험의 스타트 선상에 있는 느낌. 인연의 서막이겠죠.어쩌면 몇 바퀴를 더 돌아도 그 주위만 맴돌 것 같은 인연이, 아니 영영 만나지 못할 숱한 인연속의 하나였을 우리가 이렇게 접근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습 뽀뽀 덕분이었네요.
남편은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남편이 입술이 안단테 안단테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눈은 커졌고, 곧 눈을 감았다.
나는 기습 뽀뽀에 불과했지만 남편은 틀림없이 무게도 느낌도 시간도 뛰어 넘을 것이다.
저 속도로 다가온다면 삼초 후 공격이 시작 될 것이다.
나는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분 좋은 공격은 내 입술에서, 입안에서 융단폭격 되고 있었다.
제법이네, 이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