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초행길이라면서 근방에 저수지가 있다고 어떻게 장담하죠? 남편은 툴툴 웃었다. 비린내를 맡았어요. 나는 킁킁 거리며 냄새를 쫒기 시작했다. 안개 속을 지나다보면 늘 감지되는 물 향기 같았다. 남자들은 비린내라고 표현할지 모른다. 같은 냄새에 표현만 다를 뿐 어차피 물컹 만져질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남편의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혹시...... 혹시? 내가 되물었다. 이 길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는 게 아닐까요? 네비게이션은 문제없는 도로로 일직선을 표시해주지만. 목소리까지 떨렸다. 돌아갈까요? 불안해진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남편은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저앞에 탑차가 정차해 있네요. 길이 끊긴 건 아닌 모양이네요. 한번 물어 볼게요. 남편은 1톤 탑차 곁에 정차했다. 마치 바다에서 폐선을 만난 전율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느껴졌다.고개를 젖힌 사람이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죽은 것 같아요. 남편의 팔을 잡았다. 설마, 쉬고 있겠죠. 지나온 길에서 안개 속을 떠다니는 부유물 같은 들판의 농부들, 도로와 철길이 만나는곳에 기이하게 느껴지던 우선 멈춤의 푯말, 쉬가시지 않는 안개가 주는 몽롱함 혹은 나른함, 그리고 도로의 끝은 낭떠러지가 있을 것 같다는 남편의 추측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없었다. 거기다가 이 안개 속에 정차한 탑차 기사의 모습까지 더하고 보니 정말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낯섦으로 가득 찼다. 초등학교시절, 항상 뒷길로 학교를 다녔다. 뒷길은 약간의 지름길이기도 했지만 은밀한 무엇을 꿈꾸고 있었다. 정확히 집어 이것이다 라고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막연한 설레임으로 뒷길을 선호했다. 운이 좋으면 산딸기랑 머루도 먹을 수 있었다. 당산나무를 지나면 상여집이 있었다. 항상 고리가 빠진 채로 상여집 문은 바람결에 덜컹 거렸다. 나는 그 소리를 좋아했다.친구들은 소름돋는다며 상여집을 피해갔지만, 상여집 곁 울창한 아카시아 숲에서 그 소리를 채집했다.내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거야. 속에 것을 꺼내 보이며 외치고 있는 거야. 그저께 뒷산에 묻힌 털보아저씨가 수시로 드나드는 소리일거야. 형형색색의 깃발을 앞세우고 마을 사람들의 어깨에 얹어져 떠난, 혼이 다녀간다는 할머니의 말을 곱씹어며 나는 상여집 문이 덜컹 거리는 소리에 귀를 열어놓았다. 무섭다기보다는 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문득 지금의 이 상황이 수십 년 전의 어느 하루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늘 남달랐던 잣대로 바라보며 느끼던 어느 하루가 부표처럼 떠돌다 오늘의 시간과 맞아 떨어져 내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면, 그때 남편은 어디에 있었을까. 여섯 살 적은 나이로 어머니의 치마폭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궁금해진다. 탑차 기사는 남편의 두드림에 눈을 떴다. 다행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유리를 반쯤 내리고 남편을, 나를 멀뚱하게 쳐다봤다. 이쪽으로 쭉가면 어디로 나오죠? 기사는 하품을 하며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단잠을 깨운 버릇없는 놈이라는 말만하지 않았지, 그대로 전해들은 것도 같았다. 청송이요,
청송. 남편은 내손을 꽉 잡았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네요.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 영화, 그래, 영화였네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