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탑차 기사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매듭이 풀린 환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았다. 청송으로 갑시다. 선봉에 선 장군처럼 외쳤다. 가는 길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과 계곡과 넘쳐나는 들판의 향연. 곡식이 익어가고 알알이 맺힌 열매는 고개를 숙였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는 시월의 풍경은 우리를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녹음이 짙어져 단풍들면 하늘은 그렇게 높아졌다. 청송으로 향하는 마음은 일찌감치 서로의 벽을 허물어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이미 우리의 목적지는 청송으로 정해진 듯 신바람이 났다.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무인 가판대가 있었다. 사과가 한 무더기씩 놓여진 가판대 앞에서 괜히 힐끗 거렸다. 혹시 나무 뒤에 숨거나 바위 뒤에 숨어 지켜보는 것을 아닐까하는 마음에서.남편이 한 무더기를 봉지에 담아 나무로 만들어 놓은 함에 만원을 집어 넣었다. 잘했다고 나는 박수를 쳤다.도로와 철도가 만난 지점과, 좀비 같은 농부와 짙은 안개와, 탑차 기사의 졸음까지 잊어 버렸다. 살면서 한번쯤 만나게 되는 기이한 현상으로 밀쳐두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도 할 수도없는 이십 일 세기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남편이 휴지로 쓱쓱 문지른 사과를 건네주었다. 까다롭게 청결하지 않지만 약간은 망설였다. 남편은 주저하는 내가, 보란 듯이 크게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짐승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야만적이거나 불쾌하다는 범주를 벗어난 섹시에 가까운 묘한 기대치가 가슴에 닿았다. 단지 사과 한 입 베어 물었을 뿐인데 가슴에 비집고 들어오는 아드랄렌, 남편을 보며 황색경보에서 호감이가는 경보해제로 바뀌고 있을 때 청송 시내로 차가 진입하였다. 그다지 크진 않았지만 낯설다는 느낌 대신 오밀조밀함으로 시내가 정돈되어 있었다.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남편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하루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의 일용할 양식을 채워 넣어야만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훈련을 해온 것 같다. 배고프지 않아도 시간을 보며 식사를 해야 한다는 주입성 허기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개인의 편차는 다르지만. 솔직히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사실 청송 길에 진입하기 전까지 무서웠고 놀랐다. 안개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그쪽으로 흐르라며 자신의 무게중심을 기울인 게 아닐까. 마치 나뭇가지만 보았는데 잎을 달고 꽃은 피운 것은 정말 아닐까. 그런데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과 함께 느끼고 본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잊자.더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불가사의한 경험을 했다고 떠벌이고 다니거나, 메스컴에도 출연하지 않는가. 남편은 조금 전 상황을 잊어버린 듯, 한 끼 식사에 매달렸다.드시고 싶은 것 말씀하세요. 이러다가 정작 제 위주로 식당에 들어갔는데 밥맛이 없다고 하시지 말고. 남편은 눈가에 주름살을 지으면서 웃었다.추어탕이 먹고 싶네요. 나는 고민하다가 대답을 했다. 남편의 풍향계는 추어탕 집을 찾기 위해 요란스럽게 움직였다. 고디탕과 추어탕을 함께하는 음식점이 많든 데요. 어디보자, 곧 찾겠습니다. 마음이 변하기전에. 당구장과 미용실과 피씨방과 고깃집과 순대국밥에 중국집, 아, 저기 있네요. 미꾸라지 튀김전문 추어탕 집, 모시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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