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끝낸 나는 욕실 문을 열었다. 또 다른 세상에 들어 온 듯 분홍색 전등이 엷게 켜져 있었다. 남편과 거리는 이미터 정도라 추정된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이 밀착하거나 손을 잡기도 했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채로 거리감이 좁혀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젖은 몸을 닦은 타월로 감싼 가슴은 쿵쾅 거렸다. 이 울림이 있다는 건 관심 안에 남편이 들어 왔다는 이유이리라. 침대에 반쯤 엷은 이불을 덮은 남편이 티비를 보다가 나를 올려다봤다. 남편의 눈과 마주치는 것이 쑥스러워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최순실 정유라 장시호 최순덕 우병우 차은택 그리고 박근혜대통령, 특히 우병우의 오만 방자한 여기자 레이져 눈빛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고 종방 아나운서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고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45대 대통령으로 당선 확정이 되었다는 자막이 밑에 깔려있었다.남편은 리모컨으로 티비를 껐다. 방안은 순간 물속으로 가라앉는 잠수함처럼 적막이 흘렀다. 우병우도 트럼프도 적막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내시야에 가득했던 영상이 사라지고 남편의 알몸이 들어왔다. 남편과 거리는 삼십 센티로 추정된다. 분홍색 전등의 필라멘트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남편의 손이 내손을 잡았다. 아니 내손이 남편의 손을 잡은 것은 아닐까. 욕실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남편은 내 몸에 감겨진 타월을 천천히 걷어내었다. 반짝 알몸이 드러났다. 분홍색 전등은 잠수함 잠망경을 물 밖으로 올리려는듯 필라멘트가 더 떨리고 있었다.남편은 자신의 몸에 덮여진 이불을 발끝으로 밀어내었다. 거기 남자가 있었다. 나는 남편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일전에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 극렬한 페미니스트 한 여성은 이렇게 소리 쳤다. 왜 섹스를 할때 삽입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알 수 없다. 흡입이라는 표현으로 정정해달라고. 여성은 사족을 달았다. 거인이 램프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 나는 매번 경험한다. 그러므로 내게 삽입은 어울리지 않는다고.남편은 내 몸을 항해하기 시작했다. 등대의 불빛도 없이. 암초와 물보라와 여울목을 타고 넘는 항해를 위해 남편의 돛이 올라갔다. 이제 남편은 선장이고 항해사이고 선원이었다.숙달되고 안정된 항해는 아니었지만 남편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서두르거나 얼쩡거리지 않고 내몸을 만지고 핥았다. 나는 남편의 남자를 흡입 할 만큼 강렬하진 않았지만 무사히 항구에 정박하기를 도와주고 있었다.서서히 분명하게 내 몸속으로 남자가 들어왔다. 작은 신음소리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남편의 입술이 다가와 내입을 열게 했다. 참고 있던 신음 소리가 남편의 입속으로 전달되었다. 남편의 혀가 내 혀를 마중 나와 있었다. 반갑다고 악수를 했다. 악수는 계속 되었다. 집요한 악수는 몽롱하고 나른하고 짜릿한 곳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기우뚱거리지만 묘하게도 중심을 잡아 다시 걷게 되고.중심을 잡으면 고여 드는 감미로운 환희. 다시 기우뚱, 다시 중심잡기. 구름 콜택시가 나를 태워 하늘로 드라이브를 하고 있다. 지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