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내 기분이 어떠한가. 내게 물었고, 내가 먼저 대답하고 남편에게 내 대답을 들려주고 싶었다. 하루가 어땠는냐 하는 남편의 질문에,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내안에 남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남자와 살아볼까. 이 남자라면 뭔가 인생이 무료하거나 절망적이지 않을 것 같다.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밤새 헝클어진 머리를 묶고 손으로 하품을 가리고, 약간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아침을 맞이하겠지. 남편은 내 움직임에 잠깐 눈을 뜨겠지만 투정하듯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겠지. 아침 햇살과 향기를 맡기 위해 창가에서 서성거리다가 반쯤 창문을 열고 “행복해” 그런 말도 하겠지. 조금은 민망하고 부끄럽긴 하겠지만 굳이 그 말을 포기할 순없겠지. 내가 자신 있는 콩나물국을 끓이며 혼자 먹을 때와 달리 소고기도 잘게 썰어 넣겠지. 콩나물의 시원한 맛을 배가시킬 단백질의 풍성한 맛까지 그리고 이불속 남편의 천진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출근시간을 챙기는 자신이 대견스럽다는 생각까지.그렇다고 매일 콩나물국을 끓여줄 수 없어 요리학원에도 다니겠지. 사랑받으려고 요가학원에도 다니고. 혼자 부딪히고 비비고 살아온 내 삶에 남편이라는 동행자를 올려 놓으며 기분 좋은 무게를 느끼겠지. 이제껏 누려온 자유도 남편과 함께하는 자유로 바뀌겠지. 서로 이해해주고 맞춰주면서, 부족하면 채워주고 넘치면 들어주는 필요 불가분의 원칙처럼. 잘 할 수 있을까. 먼저 내가 만든 담장부터 허물어야겠다. 담장을 허물면 내 정원에 만발한 꽃도 보이겠지. 벌과 나비도 더 많이 찾아들겠지. 정원의 향기도 곳곳에 퍼져나가겠지. 생명을 품은 씨앗들도 날아 오겠지. 부드럽고 감미로운 바람이 정원으로 찾아와 작은 연못에 물결 무늬도 그려내겠지. 나뭇잎도 떠다니고 이끼 낀 돌멩이도 보이는 저 작은 연못에, 금붕어도 사는 저 작은 연못에 뭉게구름 새털구름 물결 따라 일렁이고, 나는 결혼을 꿈꾼다.한 번도 남자들을 만나오며 구체적으로 결혼을 생각한 적이 없다. 나이를 먹은 탓일까. 놓치기 싫은 남자를 만난 이유일까. 명확하고 속 시원한 해답을 지금 구하기엔 내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다. 그대로 마음 가는대로 마음 닿는 대로 그렇게 방치하고 싶다.남편의 물음에 이제 답할 때다. 하루의 기분에 남은 날의 기분까지 얹어 답할까요? 남편은 길가에 차를 세웠다. 뭔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무거운 낌새를 느꼈을까. 십일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단풍도 빛을 바래고 있었다. 호젓한 국도는 가로등 불빛에 더 여위어가고 있었다. 차량 불빛이 뜸하여 약간은 두려움도 느껴졌다.남편은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대답을 하기엔 빨랐고 그런 대답을 기다리기에도 빨랐다. 한 번의 데이트로내 것, 네 것으로 살다가, 우리를 꿈꾸는 가증스럽고 치명적인 선택의 매력은, 그 끝을 경험하고 싶어 내가 잠깐 뜸을 들이며 남편을 향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우리 결혼할까요? 더 알게 되면 이런 생각도 이런 말도 하지 못할 것 같아 용기 내어 해 봅니다.나는 얼굴이 화끈 거렸다. 시간이 멈춰진 듯 심장도 멈춰진듯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