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붕어빵처럼 틀에 의해서 똑같이 찍혀져 나왔다면 삶이란 단순하고 무의미하고 차라리 무력해질건데 메기 빵도 있고 쏘가리 빵도 있으니 이 얼마나 살맛나는가. 낄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체통에 도착할때까지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물결에서 이탈한 몇 사람은 전염된 웃음을 흘리면서 나를 쳐다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별의별 개떡 같은 놈도 있다는 식의 표정을 얼굴 가득 지으면서. 그러나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역시 세상은 살 맛 난다고. 역시 세상은 쫄깃쫄깃 하다고. 우체통에 편지를 집어넣었다. 시간을 보았다. 두시 오십분. 지금 나는 무엇 때문에 시간의 포로가 되어 있는가. 네 시라는 자유롭지 못한 구속의 덫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튼튼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파란불이 켜지자 이마와 목덜미에 간지럼 먹히던 늦여름의 햇살을 털어내며 저쪽과 이쪽의 사람들은 길만 바꾼채 다시 물결을 이루었다.<손님>에 나갈 것인가 나가지 않을 것인가는 이미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나를 떠난 발걸음은 정확하게<손님>으로 향하고 있었다.<손님>을 알고 있는 여자 그 삐거덕거리는 목조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수줍은듯 이 나직하게 대나무로 엮어 만든 검은색 출입문을 만난다. 어디에서 나는지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아카시아 꽃향기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러다가 문을 열면 베토벤과 결혼했다는 사십대 초반의 여자가 때로 테이블을 오가며 차를 나르기도 하고, 뮤직 박스 안에서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려놓기 위해 비닐종이처럼 양미간을 구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베토벤의 운명처럼 <손님>안에 흥건히 엎질러있다. 스스로 잠수를 택하지 않으면 베토벤에게 익사하게 된다. 나는 항상 익사의 전율을 택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찾아와 항시 열려있는 청각을 훔치고 종내에는 목젖을 누르면서 마지막까지 숨통을 죄여온다.그 황홀한 <손님>에 진정한 손님으로 남기 위한 자격은 스스로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뜨거운 가슴으로. 세시 삼십분 어느새 <손님>앞에 다다라 있었다.흐린 하늘을 보고 있다가 목조의 첫째 계단을 밟았다. 그 감촉이 또르르 굴러 오는 은빛 구슬 같았다. 둘째계단 셋째 계단…… 계단은 그 전처럼 아홉 개였다. 그러나 많이 옅어진 아카시아 향기로 조금은 실망되었다.모이 찾기에 급급하여 거의 세 달 동안 비워 두었던 <손님>의 문을 미안한 듯 가만히 열었다. 아, 베토벤은 떠나고 없었다. 뮤직 박스 안의 베토벤 마누라도 없었다. 테이블 사이로 상큼상큼 걸어 다니면서 추억처럼 웃음을 실어 보내던, 그래서 취한 듯 지그시 눈을 감고 블랙커피만을 고집하게 했던 베토벤 마누라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뮤직 박스는 커텐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구의 종말과 같이 하게 될 베토벤 대신에 FM방송으로 바꿔 놓았다.그 무서운 변화는 두렵기까지 했다. <손님>의 자리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였다. 세시 오십 이 분. 종업원처럼 보이는 아가씨가 칠십대 노인 옆자리에 앉아 팔을 주물러 주면서 갖은 아양으로 양념을 치고 있었다. 노인은 팔한쪽에 전해지는 교태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주방 아줌마에게까지 이미 쥬스가 전달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