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는 노인과 자신의 관계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시위라도 하듯 일수 돈을 받으러 온 아줌마에게까지 쥬스를 시켜주고 있었다. 거의 무표정한 노인을 버려준 채. 나는 갑자기 난감해졌다. 손님이 아닌 손놈의 분위기 안에서 더 이상 앉아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때 문이 열렸다. 카운터 위에 걸려있는 시계가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여자가 들어왔다.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주저하지 않고 내 앞에 멈췄다.“지석훈씨죠?”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앞자리에 앉아 말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나는 시선을 둘 곳을 몰라 엽차를 소리 나게 후루룩 마셨다. 확증을 잡은 형사 처럼 여자는 당당했고, 꽁무니를 감추고 낑낑대는 자신의 모습에 갑자기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한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여자가 얼굴 가득 웃음기를 털어 내지 않고 앉으라고 했다.“제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솔직히 일어났지만 「손님」을 나갈 자신이 없었다. 궁금하지 않느냐는 여자의 말에 마지못해 앉는 표정을 지으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여자 몫의 엽차를 가져다 놓기위해 다가 왔던 다방아가씨는 돌연한 나의 태도에 사뭇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어느 정도 수습된 모습 앞에서 엽차를 올려놓았다. 기다렸다는 듯 여자가 나를 쳐다봤다. 엉겁결에 커피라고 이야기했고 여자는 예의 웃음을 머금은 채 같은 것으로 주문하면서 엽차 잔을 자신 앞에 당겨 놓았다. 커피는 고맙게도 빨리 도착했다.나는 티스푼을 잡은 채 그제야 여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 얼핏 베토벤 마누라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래서 본 듯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설탕 한스푼을 커피 안에 풀어 놓았다. 뜨거운 커피는 시치미를 뚝 때고 평온을 가장하였다. 다시 한 스푼을 집어넣고 별 모양으로 저어 보았다. 별 모양으로 설탕을 녹인 커피 맛은 색다른 맛일까. 제각각 동그라미, 네모, 세모, 별 모양으로 설탕을 넣고 저었다. 왜그랬을까. 설탕을 녹이기 위하여. 문득 병구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속으로만 웃었다.“이 집 커피 맛이 어때요?”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듯 내 몽상을 깨드려 놓았다.“지금 손님이 아니듯 커피 맛도 아닙니다.”“여전하네요. 그때나 지금이나.”그때?“저 모르겠어요. 은영이에요.”“은영이라구?”내 멱살을 불끈 쥐고 한 순간에 오년 전의 과거로 충분히 돌려보낼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다.지금 그녀와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아, 이렇게 수줍은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오년의 세월은, 나는 그 오년의 세월에 무엇을 했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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