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생살을 뜯어내는 아픔의 과거에서 꼬깃꼬깃하게 여며왔던 미래라는 은영이의 자전거ㅡ은미는, 다음날부터 식사시간 외에는 놀이터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은영이와 함께.어쩌면 내가 집에 없으면 식사시간조차 거르고 놀이터에서 고군분투할지 모를 일이었다.고군분투라는 표현을 해놓고 피식 웃었다. 그 말이 가장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 때쯤 들어온 은영이의 얼굴에는 햇볕에 빨갛게 익어 있었다. 그리고 식사를 차리면서 쉴새 없이 쏟아내었다.“형, 뒷바퀴를 든 채 전진할 수 있어요? 오류동에 있을 때 아참, 아무튼 그전에는 앞바퀴를 들고 전진했거든요. 근데 자전거는 왜 후진을 할수 없죠? 그 덕분에 묘기가 줄었잖아요. 사실 은미는 너무너무 이뻐요.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내가 부리려고 하는 묘기를 척척 해주거는요”보를레르처럼 살고 있는 후배시인이 보내준 글을 읽고 있다가 난데없는 은영이의 따발총에 멍하니 주방을 바라봤다.찌개 끓는 소리와 수돗물소리 사이로 난사되고 있는 총알의 무게로 시인(詩人)을 밀쳐둔 채 그녀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내가 생각해 놓은 묘기는 끝이 없어요. 정지된 채로 오래 버티기, 제자리에서 회전하기, 핸들 뒤로 하여 전진하기, 아참 핸들 하니까 생각나네요. 내일을 향해 쏴라, 봤어요? 아름다운 남자 폴 뉴먼. 핸들위에 여자를 태우고 새처럼 자전거를 타던 장면은 압권이라고 생각해요. 봤죠, 그 영화를 보면서 자전거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았죠. 자전거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아름다운 남자 폴 뉴먼을 위하여”물 잔을 높이 들었다가 마시는 그녀를 보면서 새삼스럽기 보다는 이미 익숙해진 느낌이었다.그러나 나는 여성지에 보내야 될 수필에 매달렸고 은영이는 자전거에 매달려 있었다. 왠지 글자 한자도 채우지 못한 원고지를 조심스럽게 안아 볼 때도 있었다.그 매달림은 무엇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거의 생활의 방편이 되다시피 해 버린 지금 한때 열렬히 갈망했던 작가라는 소망의식. 암중모색 안에서도 기필코 반딧불 같은 글을 빚어내리라.그래서 저마다 구덩이를 파고 동면해 버린,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그 깨달음의 실체를 조금씩 나누어 주고 있는 은영이로부터 내가 길어 올리고 있는 사금파리들. 안다.나는 더욱 더 낮은 포복으로 전진해야 한다. 마치 축 몰이에 몰려 바둑돌을 던져 버리고 돌아 앉아 포기해 버렸던, 나의 고갈된 은근과 끈기를 은영이로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항상 마감일에 쫓겨 허둥대는 게으름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한다. 애써 간신히 채어 넣은 탈고된 수필을 앞에 두고 이것저것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생각에 시간을 뺏기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가득한 정적 안에 갇혀 있었던 서른 두 평의 아파트가 갑자기 들썩거렸다.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나야, 보고 싶다.” 병구! 없어진 꼬리가 돋아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 그래, 나도 보고 싶어.” “내일, 면회 올 수 있지?” “내일?” “아무튼 와야 해. 네가 없으면 안 돼.” 나는 달력을 쳐다봤다. 이미 몸에 배어 버린 버릇으로, 마감일에 임박한 원고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내일 간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피곤했던지 소파에 깊게 앉아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은 모양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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