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닥에 떨어졌다. 눈을 뜨자 은영이가 옆에 앉아 있었다. 웃음을 가득 베어 물고. 비록 바닥에 추락했지만 질 좋은 휴식을 한 듯 머릿속은 맑았다. “형, 멋진 장소를 발견했어요.” “멋진 장소라니?” “아파트 뒤에 있는 언덕 말이에요.“ “으응, 유일하게 그 전에 여기가 산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곳이지. 그런데, 왜?” “그 언덕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뛰어내리면서 공중회전을 시도하려 하거든, 내 생각이 기막히지 않아요?” “위험하지 않을까. 족히 육 미터는 될 건데” “위험은 어느 곳에서도 매복해 있어요. 도전은 아름다운 거지.” 나는 병구 이야기를 했다. “어때? 같이 가지 않을래?” “다음에 갈게. 내일 시도하려는 공중회전 때문에 잠이 올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은영이는 쉬 잠이 오지 않는지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였다. 잠은 소량의 죽음이라고 누가 말하였던가. 깊은 수면은 다음 날 더할 수 없는 활력소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죽음을 부채질하는 계기가 됨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아침에 애써 깊은 잠을 잔 것처럼 자기최면덕분에 조금은 상쾌해졌다. 은영이는 벌써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있었다. 빗살무늬유리에 비친 은영이는 너무나 선정적이었다. 은영이의 몸에서 잠시 멎었다가 바닥으로 또르르 굴러 내리는 물방울을 떠올렸다. 그녀가 술에 취해 털어 놓았던 독일의 비밀도 떠올렸다. 부모는 낯선 땅 아헨에서 죽었다. 가스폭발로 부모가 죽던 날 밤, 은영이는 나이트클럽에서 술과 춤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엄청난 죄의식을 느껴서 때때로 목을 조르고 있는지 모른다. 의미 없는 독일을 뒤로 하고 돌아와서 민들레 씨앗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신문에 난 내 사진을 보고 찾아왔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병구에게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 은영이가 내 허리를 껴안았다. “형,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두천 행 표를 끊었다. 주말이 아니라선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아, 오월이구나. 가로수의 호위를 받으면서 이차선 국도를 들어선 버스는 제법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하늘은 유리에서 반사되어 비춰지는 풍경으로 눈이 부셨다. 수만의 나비 떼가 하늘 가까이에서 맴을 돌면서 세상을 희석시키는 느낌으로 내렸다. 왜 일찍 외출을 생각 못했을까. 다방에서 전화를 걸었다. 속눈썹 같은 열대어들이 어항 안에서 하늘하늘 물결을 일구어 내는 것을 취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병구가 들어 왔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바짝 따라붙고 있는 여자와 함께. “갈 데가 있어.” 여자와 눈인사를 한 내 손을 잡으며 병구가 일어났다. 운전병이 딸린 군용 지프가 대기 중이었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2 03:07:02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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