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수컷이 암컷을 좋아하는 자연의 순리를 그렇게 따르기가 힘 드는 거야? 너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아니 그 윗대도 조물주가 만들어주신 그대로 따르고 순응하며 살아왔는데 정말 얄궂다. 널 보면서 이해가 안 되지만, 내 소중한 아들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너의 혼란스러움이 얼마나 힘들까하고 종종 밤잠을 설친다. 너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러다보면 순한 여자를 만나 그렇게 한 세상 어우렁더우렁하면 한 때의 객기쯤으로 잊혀 질 것도 같았는데, 여전히 넌 정체성으로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에 머물러 있었구나.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전화기 저쪽에서 묵직하게 들려왔다. 베란다의 반쯤 열려있는 문을 닫았다. 어항 속 툭 눈 붕어가 뒤뚱 거리며 먹이를 찾아 연신 주둥이로 바닥을 흝고 있었다. 바닥에는 다슬기들이 서로 뒤엉켜 스크랩을 짜고 있는 듯 보였다.주둥이로 건드린 다슬기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남자의 귀에는 다슬기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버텨야 해! 툭눈 붕어는 어항속 절대 군주 였다.
-석훈아, 듣고 있나? 그렇지, 어머니와 통화중이라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네.
-수술은 언제해도 늦지 않아. 허지만 네가 가진 정체성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거야. 그렇지? 더 많이 너를 지배하고 있는여성성이 어쩌면 어릴 적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남자의 당당함을 내세울 것 없다는 이유로 네가 남성성을 포기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야. 이건 엄마의 생각인데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 봐. 물론 그전에도 그랬겠지만 어떻게 감정선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래도 아무 느낌도 없고 수술하려는 네 생각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더 이상 말리지 않을게. 수술을 해서 여자가되 든, 지금 그대로의 석훈이로 살아가든 항상 난 너 엄마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거야. 미안하다.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너에게 모진 고통을 심어준 것 같아서. 어머니와 통화를 끊었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베란다 유리창으로 오밀조밀한 시내가 보였다. 햇살도 수북했고 구름도 넉넉했다. 겨울은 완행열차처럼 느렸다. 가을 낙엽들이 겨울 길가에 뒹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시간은 목욕물처럼 따뜻할 게고 누군가에겐 고드름처럼 시릴 게다.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배가 고프다고 다시 뱃속이 징징댔다. 걸음을 떼며 어젯밤 밤새 얼어붙도록 떠나지 못했던 베란다에 눈길이 갔다. 남자가 지켜본 겨울밤은 그악스러웠다. 가로등과 등진 하늘은어두웠다. 별빛도 달빛도 쉽게 범하지 못하는 어둠 덩어리로 차가운 바람만 쑹쑹 흔적을 내고 있었다. 가끔 별똥별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는가보다. 저 풍경과 마주하기엔 인생은 너무 전투 이기에. 저 풍경과 마주했을 때 전사로 살아가기엔 많은 것을 양보하고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기에 적합지 않으므로 밤에 눈을 닫으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