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몸속에서 끝이 뾰족한 표창이 날마다 자라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뿌리까지 뽑아내고 싶지만 이미 단단하게 활착된 뿌리의 처음은 심장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심장을 뽑아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건 죽어야만 끝이 보이는 선택이다. 남자와 여자도 아닌 중간을, 그 보다 더한 몸속을 지배하고 있는 여자를 택해야 한다는 이 황당무계한 현실이 날마다 표창을 자라게 했다. 그것이 이번 삶에 숙명처럼 받아들어야 하는 무게였다.
남자가 가진 정체성의 혼란은 사춘기 때 확연히 느꼈다. 남자 목욕탕에서 자꾸만 시선이 가는 정체모를 파장은 가슴골을 타고 내리는 한줄기 물줄기처럼 간지럼을 먹였다. 진원지와 원인으로 밝혀내고 싶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상생활에서도 물 안에 기름이 떠돌 듯 겉돌았다. 뭘까. 알고 싶었다. 누구에게 선뜻 물어보지도 입 밖으로 낼 수도 없는 소용돌이 안에서 항상 맴을 돌았다. 무엇에 대한 불명확한 것으로 가득차서 남자는 세상 사람들을 정면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해답을 듣고 싶었다. 간절하고 절실하게. 누가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어줄까.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기나 할까. 듣는 시늉이라 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2차 성징으로 남자는 성별위화감이 커지면서 큰 벽에 부딪혔다고 느꼈다. 소외당하고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다. 악악 소리치고 빗속을 달려 흠뻑 젖은 채로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잠이 들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더욱 더 또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려웠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가위 눌린 꿈과 낭떠러지에 추락하는 꿈을 하룻밤에 동시에 꾼 적도 있었다. 인정하기엔 억울했고 받아들이기엔 혼란스러웠다. 뚜껑을 열면 용수철 인형이 튀어나오듯 남자는 한 번 룸살롱을 찾은 적이 있다. 사촌 누나의 주선으로 소개팅에 나오긴 했지만 흥이 나지 않고 심드렁했다. 곱상하고 말수가 적다는 이유로 아가씨가 적극성을 띄웠지만 남자는 아무감정도 없는 밋밋한 시간으로 예의상 자리보존은 해주었지만 영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촉수는무뎌져 긴장도 설렘도 없는 고문 받는 시간처럼 벗어나고 싶었다. 아가씨와 헤어지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탄력 있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 거렸다. 딱히 갈 곳도 없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터덜터덜 걸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무엇이 그렇게 신명나고 행복한지 거저 깔깔 대고 바쁜 걸음으로 쌩쌩 지나쳤다. 남자만 버려둔 채 컴퍼스의 원안에서 행복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전염되고 서로의 스크랩을 짜고 있는 어깨동무로 단단해지고 있었다. 인도의 블록 틈으로 푸른 싹이 솟구치고 있었다. 놀라웠다. 저 간절함을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무엇이 세상 안으로 싹을 틔우게하는 단단한 의지를 장착한 것일까. 이때 호객행위를 하는 남자 또래의 친구가 팔짱을 끼었다. 밤송이에 찔린 것처럼 깜짝 놀랐다. -예쁜 아가씨 있사와용. 술값도 싸구요. 웬만하면 앉은 자리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 됩니다. 예쁜 아저씨, 팔짱 풀면 미워 할꺼얌. 가실거죠? 울만한 집은 눈 씻고 봐도 없으니까 조용히 따라 오셈. 남자는 예쁜 아가씨의 말보다 팔짱을 끼고 있는 삐끼에게서 전해지는 남자 냄새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