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살아온 세상의 건너편에,발을 디딘 새로운 세상이 지금 눈앞 에 펼쳐져 있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 믿었고 들리는 것이 덤이라 생각했는데, 냄새를 간과한 세계가 은밀히 남자의 걸음을 따라 행되고 있었다. 사냥꾼처럼 먹이를 찾아 불을 밝히는 도시의 네온사인은 가진 자의 주머니를 향해 멀고도 넓게 서로의 빛의 경계선을 허물고 있었다. 밤이 낮이 되었다. 남자가 이제껏 살아온 동선에 없던 조명등이 보였고 사람들의 비틀거림도 보였다. 삐끼는 팔짱을 풀고 앞서 걸으며 한두 번 뒤를 돌아봤다. 덫에 걸려든 자신의 소유물을 확인하는 듯 돌아보면서 만족해했다. 남자도 눈이 마주치면 엷은 미소로 응답했다. 그것으로 둘의 관계가 정리되고 있었다. 구석진 곳에 삼 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저기구나. 남자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일탈을 도와줄 최상의 장소라고 입안에서 자음과 모음이 맞춰지고 있었다. 지상을 외면한 삐끼의 발걸음은 빠르게 지하로 향했다. 촛불이 파르르 리는 등이 계단을 밝히고 있었다. 잠시, 주춤했다. 두려웠다 . 알지 못하는 세계에 던져진 것도 그러한데 지하로 옮겨지는 발걸음은 더더욱 그랬다. 여기서 돌아갈까. 남자는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파들은 서로 엇갈려 걷고 있지만 아무도 지하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하가 가지는 은밀함을 한두 번 경험하고 난 뒤 외면해 버린 걸음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지상과 지하의 간격을 둔 것일까. 세상에서 이성에 눈을 떴을 때부터 버림받고 자랐다고 생각한 덕분에 두려움도 느끈히 견딜 수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했다. 아니 또 다른 공포였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하는 이 모호한 정체는 성소수자가 퍼즐을 맞추어 가다가 생소한 공간을 맞닥뜨린 것이다. 모양과 크기에 맞는 퍼즐을 집어 들어 공간을 채웠지만 모서리 한쪽이 비어져있는 난감함과, 스스로를 확실히 알고 싶은 호기심과 생소한 곳에 발을 들여놓고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가늠되지 않은 이 나직한 떨림이 번갈아 덤벼들고 있었다. 삐끼의 체크남방 안의 근육질도 쉽게 눈에 띄었다. 몇 개단을 앞서던 삐끼가 남자를 돌아봤다. 뭘 망설이냐는 투의 눈빛이 날아왔다. 남자는 무심코 건물위 에 달린 간판을 올려다봤다. 양귀비. -손님, 함진 애비도 아니고 걸음이 느려 터졌네요. 깎은 배처럼 사 근사근하던 아까와는 달리 약간은 짜증을 싣고 있었다. 남자는 앞으로 나가는 걸음을 잊고 있었던 것처럼 부랴부랴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이미 삐끼의 손아귀에서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이 목소리 로 증명되고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자 너구리굴처럼 음침한 분위기가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연 삐끼는 입구에서 공간을 확보했지만 강압적인 자세로 은근히 압력을 넣고 있었다. 니 발로 왔으니 니 발로 들어가라는 눈짓이었고 어깨 짓이었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두 명의 여자가 달려와 팔 하나씩을 낚아챘다. 그리고 묻지도 따지지 않고 구석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너구리 굴보다 더 어둡고 퀴퀴했다. 가죽 소파에 남자를 앉혔다.-술이 떡이 되어 들어온 손님은 봤어도 맨 정신으로 들어온 손님은 니가 처음이에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