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었지만 좀비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느낌을 여전히 품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머릿속의 가로등이 켜졌다. 더 이상 성정체성의 고민이 필요 없을 정도로 뚜렷해졌다. 얼마나 무거운 무게가 짓누르면서 압사 시키려고 남자를 괴롭혔던가. 왜 남들처럼 이성에 눈을 뜨고 얼굴을 붉히며 고민하는 평범함에서 멀어진 채, 외곽지대로 겉돌아야 하는가. 묶인 매듭은 풀고 싶었고 엉켜있는 끝을 찾아서 정상적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어쩌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자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걸음마를 시작하거나 한글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남자의 가슴을 지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구체화되어가는 과정을 두렵고 곤두박질 치고 싶은 떨림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자신이 게이라는 현실과 이 현실을 받아들어야 하는 운명이 남자로 하여금 웅크림과 친숙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도 절망만으로 세월을 보내기에는 세상은 밝고 우렁차지 않는가. 머리만 내밀고 살려달라고 외쳤다. 남자의 목소리는 목청을 힘껏 열어 외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자음과 모음의 음절은 없었다. 머리만 빼꼼 내밀었을 뿐, 그것도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불 꺼진 방안에서였다. 스스로 문안으로 들어가 자물쇠를 채웠다고 생각 되지만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이미 세상은 남자를 격리시켜왔다. 동성에 눈을 뜬다는 이유로. 주위사람들은 배타적이 되었고 남자는 소심해졌다. 이성에 두근거리고 싶은 일말의 기대감을 남겨두었다. 그래야만 세상 속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웃고 떠들고 행복에 겨운 일원으로 어디든지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니까. 그런데 그 쉬운 것마저 남자에게는 너무 높고 너무 넓어 요원할 뿐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한 명제 앞에 막혀버린 것이다. 동성에게 더 끌린다는 마음속 말을 친구에게 할 때면 송충이 보듯 질겁을 하며 멀어졌다. 그나마 있는 친구에게는 숨기기에 이르렀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딱 한사람, 남자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주었다. 어머니였다. 더하거나 보태지 않은 이야기 속에 어머니의 한숨이 잦아진다 싶더니 아들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남자의 눈가도 젖어 있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어머니의 결론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해주는 어머니 손을 잡았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는, 지금의 현실이지만 출구는 있을 거라고 꼭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 속에서 찾겠다는 체온을 어머니께 전달하였다. 여자들도 옷을 입었다. 수박이 가슴을 출렁거리면서 남자에게 윙크를 했다. 남자의 가슴을 툭 치면서 김상사가 활짝 웃었다. 남자들보다는 가슴이 크긴 한데 호르몬 주사도 맞고 반응도 체크하면서 수술날짜도 잡아야할 거야. 생각보다 녹녹치 않을걸. 내가 아는 트렌스 젠더가 있는데 소개시켜줄까? 그렇게 알면 많은 도움이 되고도 남지. 그치? 오빵. 호호, 지금은 오빠인데 얼마 있지 않아 언니로 바꾸어 불러야겠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