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막바지에 다다른 듯 사선으로 여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번쩍 거리던 네온사인의 불빛도 목쉰 음성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야광조끼의 청소부가 꿈틀거리는 실루엣 사이로 겨울바람이 묻어나고 있었다. 취객이 비틀거리며 거리를 헤매고 또래의 청춘들이 삼삼오오 어제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남자도 저렇게 몰려다닐 일행 속에 섞이고 싶었지만 친구들은 언제부터인가 멀리하기 시작했다. 어우렁더우렁 할 사이클의 서로 다른 주파수를 들켜버린 탓일까. 아니면 같은 극의 막대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내도록 감지한 것일까. 생각해보니 유치원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장난감을 하나 가지고 놀아도 일치가 되지 않아 늘 여자들의 무리 속에 기웃거렸다. 그렇다고 여자들은 남자를 끼워주지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남녀의 경계선에 물려 공원 사이로 헤집고 다니는 비둘기마냥 구구거렸다. 알아달라고 한번쯤 관심을 기울어 달라는 외침도 아랑곳없이 학창 시절을 외톨이로 보내버린 것이다. 친구들을 탓할 수 없었다. 정작 자신의 궁극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디쯤에서 멈출 것이라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자신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것을 세월이 흐른 후에 깨닫기 시작했다. 담을 쌓고 차단했던 무수한 세월들이 남자에게 짐으로 얹어져 있었다. 그때 고쳐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적극적으로 발버둥치고 거부했다면 지금보다 확실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침묵하고 웅크려들었던 사춘기에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맞닥뜨렸다면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을지 모른다. 한없이 어긋나가서 상처투성이로 버둥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이 못하다고 하기엔 남자는 억울했고 지금이 낫다고 하기엔 두려웠다. 이 소용돌이가 주는 압박감은 남자를 늘 허기지게 했다. 먹어도 허전한 진실 혹은 거짓의 안개 속을 오늘도 헤집고 앞으로 나갈 뿐이다. 언젠가는 멈추리라. 삶이 끝난다면 당연히 멈추겠지만, 삶속에서 멈추는 기적을 경험하고 싶다. 함께 어깨동무해도 어색하지 않고 당당한 일상 속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갈 내일을 꿈꾼다. 남자의 걸음은 빨라졌다. 아침이 도시로 스며들고 있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도 시치미를 떼며 어젯밤의 환락을 덮으려는 듯 인파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아무도 남자에게 관심도 미심쩍은 시선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저런 일상이 부러웠다. 세상은 뒤쳐졌거나 낙오되어도 기다려주지 않고,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쯤 빠져도 괜찮다는 식의 무관심이 남자를 더욱 더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 남자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열심히 찾아준다면 젖먹던 힘을 내어 정체성과 맞서 싸울 수도 있는데 남자는 처음부터 명단에 없었다. 대열을 갖춘 버스 정류장 앞을 지나치면서 괜히 마지막 꽁무니라도 서고 싶었다. 갈 곳이 있고 남자를 필요로 하는 직장이 있다면. 날마다 스며드는 기대치를 확인하며 얼마나 새로울까. 삶에 새겨지는 눈금을 남자는 경이롭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을 지났다. 택시 승강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사들이 자판기 커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남자가 다가가자 선두에서 출발을 기다리던 기사가 다가와 운전석에 앉았다. 뒷좌석에 앉은 남자는 온 몸에 피로감이 그제야 몰려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