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집은 원룸이다. 아버지는 원항어선을 탔기에 일 년이고 이년, 많게는 사년을 집을 비울 때도 있다. 실상은 어머니와 쭉 생활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남자에겐 여동생이 있다. 오빠를 늘 무시하는 두 살 터울 여동생에게 받은 상처는 말할 수 없이 많다. 한 번도 오빠로 부르지 않고 ‘야’ 아니면 ‘너’였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호칭이 바뀔 때가 많다. ‘임마’를 줄여 ‘마’로 부르기도 하고 ‘새끼’까지 서슴없이 불렀다. 부모님이 있을 때는 호칭을 부르지 않고 소 닭 쳐다보듯이 했다. 남자도 동생의 행동에 별 반응도 보이지 않고 익숙해졌다. 그렇게 되니 서로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식구였다. 바락바락 대드는 여동생의 성깔머리에 스스로가 백기를 든 셈이다. 숫기가 없는 남자에 비해 여동생의 활약은 일찍이 대단했다. 여차하면 싸움질에 말썽 담당으로 낙인 찍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 올 때만이라도 잠잠 하자고 여동생을 달랬다. 아버지가 무서웠는지 말썽 부릴 힘을 비축하는지 그때만큼은 정말 다소곳해졌다. 아버지는 여동생을 편애했다. 들고 들어오는 선물의 크기도 달랐고, 용돈의 액수도 달랐다. 그러나 남자는 섭섭해 하지 않았다. 남자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성정체성의 해답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으면 다른 어떤 것에도 별 관심이 없어졌다. 다만 건조대에 널려있는 여동생의 내의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브래지어와 팬티였다. 낯설지 않은 친숙함과 착용해보고 싶은 강렬한 유혹은 남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느 때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숫자를 천이 넘도록 센 적도 있었다. 브래지어는 남자가 갈망하는, 여자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비로소 여자에 입문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기도 했다. 여동생이 외출한 틈을 타서 건조대에서 브래지어만 가져와 방문을 걸어 잠궜다. 여동생이 봤다면 주먹이 얼굴로 날아오고도 남음이 있었다. 두근거리며 거울 앞에서 브래지어를 착용한 남자는 자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쳐다봤다. 웃음이 나오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에 꿈꾸면서 소원하던 희망사항이 지금 남자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경이롭고 훌륭해보였다. 브래지어 하나만 착용했다는 사실 외에, 늘 망설였던 소망에 한걸음 다가간 놀랍고 신비한 경험 같았다. 온몸이 부르르 요동쳤다. 세상이 남자가 생각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낙원으로 입성한 것도 같았다.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겉에 남방을 입어보았다. 자연히 가슴에 눈길이 갔다. 남방의 실루엣을 타고 봉곳 솟아오른 표면적인 굴곡은 남자를 쿵쾅 거리게 했다. 이토록 삶이 유연해질 수 있을까. 부드러운 깃털처럼 난분분 가슴에 쌓이고 있었다. 놀라웠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적이다. 사건이고 자신에게 물을 수 있는 안부이기도 했다. 맨살과 브래지어와 남방이 제공하는 공간은 남자의 열망을 고스란히 채워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여자들은 그 공간에 무엇을 넣고 다닐까. 지금 공간이 주는 채움과 비움의 느낌을 온전히 타협되지 않은 몸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남자는 간절히 익숙해지고 싶었다. 몸이 알고 마음이 가는, 착용된 브래지어와 일치감을 맛보고 싶었다. 브래지어 버클을 잠글 때 경쾌하게 다가오는 밀착감은 남자를 행복하게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