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이 주어졌을 때, 남자가 맨 먼저 시도한 것은 집에서 가져온 여동생의 팬티를 건조대에 걸어 놓는 것이었다. 여자가 되기 위해 첫 번째 계단을 오른 것이라 생각했다. 몇 계단을 더 올라야 남자가 다가서야 하는 목표에 성큼 이르는지 알 수 없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상기했다. 마치 임신부가 예쁜 아기 사진을 벽에 걸어두고 보다보면, 뱃속에 아기도 예쁘게 태어날 가능성이 더 많아지듯 팬티를 보다보면 구체적인 결심이 설 것 같았다. 비스켓 크기만 한 햇살이 소파 모서리에 똑 떨어져 있었다. 환기창을 통해 햇살이 모아지는 정오쯤이라 여겨졌다. 겨울이 덜컹덜컹 몰려다니고 있었다. 원룸 바깥은 삶으로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화단의 구석진 곳에는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미 급한 모습으로 푸른 싹을 틔우고 있었다. 화단 울타리에 맺혀 있는 개나리 꽃망울이며 바람이 모이는 곳에 낙엽 무더기를 헤치고 솟구치는 민들레까지 남자는 창을 통해 풍경을 감상했다. 시선은 풍경에 머물러 있지만, 정신은 여자로 가려는 갈망으로 가득했다. 그것이 두려웠다. 언제나 이루지 못할 마음속 화살표를 좇고 자신의 측은지심도 발동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의 갈등으로 무겁고 허전한 일상 속을 헤매고 온 것이다. 두렵거나 혹은 불쌍하거나. 남자의 선로는 항상 그렇게 맞춰져 있었다. 처음부터 다른 역은 없었다. 용기를 내거나 모험심으로 눈을 돌려도 매번 남자는 자신의 선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탈선도 정차도 없는 달려야하는 운명 앞에 남자는 속수무책이었다. 여자가 되고 싶다는 트렌스 젠더의 꿈을, 조절도 아웃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달려야 했다. 뒤를 돌아보면 공허한 메아리가 떠다녔다. 해답은 없었고 있다면 주어진 선로를 달려가서 깃발을 뽑아드는 것이다. 깃발은 이제껏 공유한 남자와, 앞으로 선택한 여자의 삶이 배당 되었다는 것 외에 더 이상의 기대는 사치였다. 자연은 저토록 작은 틈새를 틈 타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해보는데 남자에게 주어진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미 끝없는 갈등과 소외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가 되었을 때 받게 되는 상처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미래의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싶지만 그것 또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얼마나 곪은 상처에 치유할 에너지가 남아 있을까. 친구들 보다 일찍 뛰어나온 아이가 교문에서 반짝 보였다. 어디로 뛰어갈까. 남자는 왼쪽에 내기를 건다. 맞히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는 속셈으로. 틀리면 배달음식에 매달린다는 우스꽝스런 내기에 아이처럼 반짝 눈을 떴다. 누구를 기다는 것처럼 머뭇머뭇 거리더니 곧장 맞은편으로 뛰어갔다. 의외였다. 늘 창문 밖에 시선을 고정시킨 적이 많았는데 학교 앞 도로가 삼각로터리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남자는 ‘이쪽’과 ‘저쪽’의 문제만을 고민했는데 ‘그쪽’도 있다는 것을 아이의 뛰어간 방향에서 알 수 있었다. 남자의 고단한 삶에도 혹시 ‘그쪽’이 존재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남자는 결단코 부정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하는 공표와 곱표만 남자에게는 최선이었다. 사지선다형은 있을 수가 없었다. 오십 프로의 확률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고 점쳐왔을 뿐이다. 이십 오프로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