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된 날의 아침, 다른 날보다 일 찍 눈이 떠졌다. 걱정했던 탓인지 다 크서클도 한 뼘 내려온 푸석한 얼 굴이었다. 남자는 거울 앞에서 한동 안 자신의 얼굴을 쳐다봤다. 삶을 향 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방랑자 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느꼈 다. 그렇다고 방랑자를 직접 만나보 지는 않았지만,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닐 모습이 지금의 자신과 닮아 있 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 벗을 삼 아 걷는 길은 서산에 해가 지면 멈추 지만’으로 시작되는 방랑자의 노래 가 누구 노래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 았다. 다만 버스 라디오를 타고 흘러 나올 때 자신의 처지와 닮아 있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낭만적이면 서 미래지향적으로 표현되었지만 남 자는 쉽게 막막하고 고달픔을 노래 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 자 자신도 어쩌면 방랑자와 같은 삶 을 살아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방랑자의 힘겨움을 자신에게 접목 시켜 보았다. 항상 물에 기름이 떠돌 듯 적당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 고, 오늘도 구름처럼 떠돌며 살아야 하는 방랑자의 애환이 스스럼없이 남자를 지배하는 전부라고 들려주고 있었다. 도시 속에, 사람들 속에 살고 있지만 어느 곳에도 마음을 붙이 지 못하고 떠돌며 살아야 한다는 운 명을 받아들인 탓일까. 모든 것이 그 렇게 연결되었다. 침대위에서 잠을 자도 공중에 뜬 듯, 공허함으로 한동 안 들썩 거렸고 혼자서 힘겨운 사투 를 벌이는 외로움이 엄습해 왔다. 고달프고 두렵고 외로운 시간의 선상 에 마라톤으로 결승점을 향하고 있 었다. 결승점은 곧 죽음일 것이다. 마 라톤을 뛰어본 사람만이 아는 심정 을 남자는 짐작해 봤다. 중간에 얼마 나 포기하고 싶을까. 자신과의 싸움 으로 흔들리며 외롭게 용단을 내려 야만 하는 지점에서 포기와 전진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놓일 것이다. 남자는 미치도록 싫었다. 마치 아물지 않은 상처에 또 상처가 덧 씌워지는 것처럼 단단한 삶의 무게 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욕실에서 샤워를 했고 우유를 한잔 마셨다. 오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병원에 가기위해 지갑을 챙겼고 사월에 맞는 옷을 입었다. 도시 속에, 사람들 속에 섞여도 방랑자 의 모습은 들키진 말자. 마라토너의 힘겨운 표정도 짓지 말자. 자연스럽 게 그들처럼 웃고 떠들고 한눈도 팔 며 때로 가슴도 펴고 총총 걸음으로 활보를 하자. 트렌스젠더가 되기 위 해 절차를 밟고 있는 정체도 탄로 시 키지 말자.  성형외과의 문을 열었다. 전화로 몇 번 상담을 했지만 직접 찾아오긴 처음이었다. 접수 담당 아가씨가 먼 저 맞이해 주었다.  -예약한 지석훈입니다.  -94년생 지석훈님이시죠? 잠깐 기 다려주시죠.  쿠숀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몇몇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 었다. 혹시…같은 수술을 받으러 왔 을까. 남자는 호기심이 생겼다. 잠시 tv에 눈길이 멎었지만 tv속 내용이 하나도 자리 잡진 못했다.     목이 말랐 다. 비치된 종이컵에 생수와 한 컵 보 턴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 종이컵 에 찰랑거리며 물이 채워졌다. 남자 는 물을 마시러 병원에 온 것처럼 벌 컥벌컥 마셨다.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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