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시 알람이 선영을 깨웠다. 어젯밤 맨발로 비를 맞은 탓인지 몸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이마를 엄지와 검지로 꾹 누르며 피곤을 조금 덜어내려는 시도를 해보았다. 기분 탓인지 머리통증이 완화되는 것 같았다. 문고리에 꽂아둔 쇠꼬챙이를 뽑아내자 짓눌려있던 가슴이 평온을 찾고 있었다. 방문을 열었다. 비 온 뒤의 상쾌한 기운이 훅 안으로 들어왔다. 앞산에서 서서히 시작되는 아침의 여명이 선영의 시야에 들어왔다. 선영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밤새 꽉 찬 요의를 느끼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선영만 알고 있었다. 요의가 아니라 어둠의 틈새를 비집고 삐져나오는, 옅었지만 그러나 분명한 햇살의 선발대에서 장엄함을 읽고 있었다. 구름과 산과 숲과 들쑥 날쑥인 돌멩이까지도 실루엣은 엣지 있게 다가왔다.  슬리퍼를 신고 부엌으로 다가갔다.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맷돌에는 방금 콩을 갈은 자국이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할머니, 아침 메뉴에 두부가 올라오겠네요. 할머니는 눈길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암, 아가씨가 두부를 좋아하나? -유일한 단백질이잖아요. 호호호. 주지의 방에서 불이 켜졌다. 곧 불경 외우는 소리가 금방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 같지 않게 쩌렁쩌렁 들려왔다. 명적암의 아침이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선영은, 괜히 어젯밤 빗속에서 맨발로 경내를 돌아다닌 모습을 떠올리면 무안해서인지 가볍게 행동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삼일동안 묵으면서 그만큼 친숙해진 까닭도 있었다. 선영은 돌 세숫대야에 담긴 빗물을 부어내고 우물물로 채웠다. 물은 날카롭게 차가웠다. 그렇지만 청정하고 투명한 물의 입자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얼굴을 돌 세숫대야에 담갔다. 온몸의 노폐물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놀라운 경험을 맛보았다. 코끝이 시렸지만 선영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푸푸. 입으로 숨을 쉬면서 물방울이 물위로 솟구치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조금 나아지셨습니까?  법진의 목소리가 동굴 속 울림으로 귓가에 닿았다. 선영은 얼굴에 묻은 물기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씩  웃어보였다. -주지스님, 어젠 비가 와서 그랬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비가 오면 그러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하죠. 행동에 옮기는 야, 옮기지 않는 야의 차이일 뿐. 나는 옮기는 쪽을 더욱 신뢰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행동에 탄력을 받는 것 같습니다. 호호호. -오늘 밖에 나갈 일이 생겼습니다.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선영과 법진의 가까운 곳에 산비둘기 한 쌍이 날아와 앉았다. 아침 햇살이 더 또렷하게 세상을 향한 날개 짓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 마리가 물 한 모금 마시고 경계로 두리번거리자 또 한 마리가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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