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주지스님께 속옷을 부탁드리는 것도 그렇고 호호, 군것질거리를 사다 주시겠습니까?법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지나갔다. -마을에서 49제로 저를 불러주시네요. -49제요?-사람이 죽은 뒤 49일째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로 불교의 윤회사상에 기인한 겁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제를 올려 죽은 이가 49일 동안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길 비는 제례의식입니다. 그래서 칠칠제라고도 부르며 이 49일간을 중유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 죽은 이가 생전에 업에 따라 세상에서의 인연, 즉 생이 결정된다고 믿는 종교의식입니다. 선영은 해맑게 웃었다. -못 알아듣기도 하고 못 믿겠네요. 호호. -종교는 자신의 확신이 없으면 언저리만 맴 돌뿐이죠. 그렇다고 제가 굳건하게 믿음의 한 복판에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 의식으로 남겨진 가족들에게 그만큼 믿음과 확신을 주었다면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낼만 하신가요? 선영은 먼 산에 시선을 던지면서 패딩의 조임 끈을 괜히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삶이 주는 무게를 실감하고 있어요. 제가 그런 나이인가요? 왜 이러죠. 남들도 이렇게 퍼즐조각처럼 맞혀지지 않는 삶에 고민할까요? -흔들린 만큼 바람에 강해질 겁니다. 너무 해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틀림없이 선영님이 놓쳐버린 그 무엇이 있을 겁니다. 가령 남들보다 더 고민해야 될 감성을 타고난지도 모르죠. 그런 것들을 품을 수 있는 예술 쪽으로 방향을 맞춰보면 어떻겠습니까? 짧은 것 같아도 또한 긴 것이 인생입니다. 고민을 피하지 말고 정면에 맞서 부딪치셔야 합니다. 법진은 합장을 하며 돌아섰다. 선영은 아침 바람을 머금은 풍경이 산자락의 울림처럼 침묵을 깨고 처마 끝에서 뎅강뎅강 요동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승복의 결 따라 움직이는 법진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것은 한 인간이 찰흙처럼 단단하게 굳어가는 동선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무엇에 이끌리듯 세속을 떠나온다고 해도 이미 삶의 굴곡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과의 싸움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울타리에 함께 하지 못했기에 야반도주하듯 불교에 귀의했으리라. 지금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번민하며 스스로의 탈출구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그 고되고 험난한 삶이 선영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성애적인 마음으로 그를 가만히 안아 주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그의 청정지역 영토에 욕정도 좋고 연민도 좋은 붉은색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싶었다. 눈을 감자 법진은 황급히 달려들어 선영의 입술을 찾고 있었다. 온몸은 오그라들고 유월의 찔레꽃 향기가 흥건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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