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계곡물은 높고 가파른 굽이굽이를 여행한 탓인지 차고 맑았다. 거기다가 새소리 바람소리가 더해져 신선의 세상에 발을 디딘 것처럼 신비롭고 놀라웠다. 선영은 속세에서 버둥거리고 있던 것을 내려놓듯 한 겹 한 겹 옷을 벗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멈춰야 된다고 타이르고 있었지만 이미 상의를 탈의해 버렸다. 순간 속이 후련하다고 생각되어졌다. 가슴이 답답하고 내내 억누르고 있는 무게를 내려놓은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두 손을 담근 손 그물 안의 찰랑거리는 계곡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한두 번 지켜보다가, 봉긋 솟아있는 가슴에 끼얹었다. 이미 몸에 물이 닿는 생각이 앞서있었기에 긴장된 위축감도 있었지만 온몸은 동그랗게 말려있었다. 그러다가 찬물이 몸에 닿자 가슴도 등도 배도 동그라미를 그렸다. 둥근 공이 된 몸에, 물이 닿자 또르르 굴러 아래로 떨어졌다. 물이 방울이 되고 골짜기를 흐르는 긴 행렬에 합류하기 위해 다시 아래로 떨어져 마르기전에 스며드는 선을 보고 있었다. 곡선이었지만 직선처럼 분명했고 직선이었지만 곡선처럼 유연했다. 선영은 설레면서 팔과 겨드랑이와 가슴을 적셨다. 혹시 누가 본다거나 온다는 생각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래로 당당히 흐르는 물과 선영은 하나였고 생명체가 계곡을 타고 넘는 울음은 곧 일체였다. 하늘은 구름을 보태어 선영에게 선물을 했다. 우거진 숲 사이에서 고라니가 퍼뜩 달아났다. 여름은 익어가고 산은 말없이 진중해지고 햇살은 그늘을 이기지 못해 빠져나갔다.  선영은 태초의 한 여자로 천년을 살아온 것처럼 여유와 평안이 고여 들었다. 도시의 어느 산부인과에서 세상에 눈 뜬것이 아니라 송사리처럼 계곡물을 타고 흐르다가 한 번의 몸짓으로 땅위로 튀어 올랐다. 그 퍼덕거림이 세상을 향한 첫 신호였다. 아가미가 없어지고 손이 자라고 발이 자랐다. 일어서서 땅위를 걸었다.  선영은 더 당당해질 필요를 느꼈다. 입고 있던 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허물처럼 벗고 탈바꿈을 해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성충처럼 아니 완전체처럼 알몸뚱이를 드러냈다. 마른침을 삼켰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경계의 긴장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대견함에 대한 격려 차원의 마른침이었다. 선녀의 날개옷처럼 바위위에 포개어두고 천천히 걸어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머리끝으로 전달되는 차고 명쾌한 전율은 선영으로 하여금 더 대담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매끄러운 조약돌이 발바닥과 교신을 하고 있었다. 계곡의 상류에서 여기까지 흘러왔냐고 묻자 조약돌은 산꼭대기 고향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 바위에서 바람과 세월에 떨어져 나와 아래로 굴러 도착한 곳이 마른 골짜기였다. 그러다가 차고 넘치는 빗물이 흐르고 모두가 휩쓸려갈 때 서로의 돌 틈 사이에서 살아남아 둥글게 조약돌에 이르게 되었다.  선영은 그렇게 전해 들었다. 그것은 이미 인간이 아니고 신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선영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지만 인간이었을 때의 부끄러움과 시기와 눈 높음은 계곡물 아래로 떠내려 보내버렸다. 더 깊이 느끼고 싶다는 생각으로 계곡물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배꼽근처에서 간지럼 먹히는 물살의 속삭임이 찰싹찰싹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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