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은 선영의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무릎과 무릎 사이를 빠져나가고,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를 빠져나갔다. 명적암 주위로 산과 골짜기와 숲과 바위들이 비로소 눈을 뜨고 있는 듯,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가 한꺼번에 와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 오밀조밀한 풍경은 컴퍼스의 중심점처럼 선영에게서 모두가 비롯되고 있었다. 누군가 귀 기울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풍경은 낡은 액자 속에서 머물러 있을 터인데, 보고 듣고 다가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앉은키의 배꼽을 찰랑거리며 바다를 향해 기약 없는 여행길에 오르는 물살을 손 그물 속에 담아보았다. 차고 매끄러웠다. 어쩌면 선영은 먼 여행길에 오르는 물결을 배웅하러 나온 기분 좋은 쉼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오랜 후, 살아남은 계곡물은 바다에 이르고 염분을 품은 모습으로 탈바꿈될 때 증발한 한 무리는 구름 속에 머물다가 다시 계곡으로 찾아들지 모른다. 어차피 세상은 둥글게 돌아가는 여정으로 맞춰져 있으니까. 선영의 주위로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손가락을 물속에 담그고 끝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먹이인줄 알고 맹렬하게 물고기들이 달려들었다. 물고기의 주둥이가 닿는 은근한 간지럼은 선영의 욕정을 잘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 엉덩이가 깔고 앉은 이끼 낀 조약돌의 감촉은 몰입할 수 있는 연결고리 같았다. 물속에 잠겨있는 엉덩이를 움직이고 봉곳 솟아있는 가슴을 만지면서 서서히 선영의 몸은 뜨거워지고 있었다. 저 바람소리로 잠재우지 못한다면 저 새소리, 저 물소리로 잠재우지 못한다면 스스로 잠재울 수밖에. 솟아오르고 뜨거워지면서 그대로 폭발해버리면 파편들은 주위로 흩어질게다. 지금 한낮의 열기가 머리와 어깨를 누르고 타올라야하는 목마른 심정으로 선영은 자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여기까지 인도했을까. 한 점도 남기지 않고 전라의 몸으로 대담하게 계곡물에 몸을 담근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세상의 커튼을 열어젖히고 보란 듯이 자연과 하나로 만들어주는 강한 접속은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은데 있을 것이다. 성감대를 자극하는지 선영의 신음소리는 은은하게 계곡을 휘감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 아아아. 칠 부 능선을 넘어 정상에 올라섰을 때 잠시 동작을 멈췄다. 몸에서 알맹이가 들어차면서 곧 빠져나가 는 이 묘한 감정의 방아 찧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동치는 굴곡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선영은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다. 햇살 탓만은 아니었다. 미세한 전류가 몸 구석구석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선영은 바위위에 벗어둔 옷가지를 봤다. 혹시나 선녀인줄 알고 가져가기라도 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될 것이기에. 일어났다. 하늘이 순간 가까워졌다. 조약돌을 밟으며 까치발로 걸어 나오는데, 돌 틈 사이에 물새알이 반쯤 보였다. 돌을 걷어내자 구슬 같은 노란 알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