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선영은 그 자리에 멈췄다. 비록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었지만 한걸음도 옮길 수 없는 끌 어당김을 강하게 느꼈다.  세 개의 작은 알속에서 세상과 접속하려는 큰 울림이 발바닥으로 전달되어왔다. 알이라는 세계는 작고 연약한 생명체를 향한 견고한 성이지만,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몇 번의 꿈틀거림으로 빛과 마주할 수 있을까.  몇 번의 두드림으로 최초의 어두운 곳으로부터 탈출이 허락될까. 걷어낸 돌을 그늘이 드리우게, 위험요소를 제거한 탑을 낮게 쌓아주었다. 자신에게도 부담스러운 햇볕이 얼마나 힘겹게 할지 염려에서였다. 혹시나 주위에 어미가 없나하고 둘러보는 것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얼른 비켜줌으로서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 배려를 해주고 싶었다. 쪼그려 앉아있는 발바닥이 따가웠다. 그렇지만 작은 알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문득 공기놀이에 적합한 구슬 같았다. 잔인한 생각이 들었다. 공중으로 던져 공기놀이라도 한다면. 머릿속에서 금속성을 통과하는 전류가 훅 훑고 지나갔다. 마치 손바닥에 올려 진, 네모든 세모든 사다리꼴이든 공기놀이에 환장한 사람처럼 순간적으로 던져 낚아채고 싶은 마음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렬한 유혹을 잠재운 것은 공중을 배회하고 있는 어미 새였다. 빠르고 낮게 울부짖는 몸짓이 곧 덤벼들 기세로 주위를 날고 있었던 것이다. 선영은 황급히 알들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하마터면 떨어뜨릴 아슬아슬한 순간을 겨우 넘기면서. 약간의 거리를 두자 어미 새는 선영의 존재를 무시한 채 바위 속 둥지에 날개를 접고 앉았다. 손 탄 알들에 대한 염려로 경계심도 두려움도 없이 선영을 바짝 노려보고 있었다. 체온을 전달하기위해 품고 있는 어미 새는 단호하고 비장했다. 어떠한 천적도 물리치겠다는 단단함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선영은 겸연쩍음으로 앞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질했다. 그리고 혼자 웃었다.  계곡이라는 지형이 은폐의 역할을 한다지만, 아무리 외부인의 발길이 뜸한 산사라고 해도 대낮에 발가벗고 다니기엔 맨 정신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선영은 꽤 오래도록 옷을 입지 않고 목욕탕 마냥 활보하고 다녔다. 그림 속 태초의 이브도 나뭇잎으로 가리고 다니지 않았는가.  무슨 일이든 그렇다. 처음 시도는 망설여지지만 그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당당해지는 경향이 있다. 선영도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옷을 입고 계곡물에서 가재를 잡아도 될 일을 발가벗은 채로 진행을 하고 있었다. 어미 새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재를 둥지 근처에 재단의 재물처럼 놓아줄 요량으로. 알몸에 닿는 햇볕이 요란스럽게 부담스러웠다. 몸을 뒤틀면서 계곡물을 헤치고 돌멩이를 들쳐보았다.  자신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한 침입자에 대한 적개심으로 푸드득 사라지는 물고기들을 뒤로하고 열심히 돌멩이를 뒤집어 놓고 있었다. 마침내 가재가 집게발을 앞세워 모습을 드러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영은 덥석 가재를 잡았다. 가재의 요동도 곧 선영의 손 그물 안에서 잠잠해졌다. 어미 새에게 별식을 대접할 자신의 행동에 용기를 주기위해 스스로 엉덩이를 툭툭 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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