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의 오후는 확연하게 차이를 드러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선영은 동작을 빠르게 했다. 뭔가 자신의 알몸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가 재빠른 동작을 부추긴 셈이었다. 산그늘이 한가득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바윗돌 틈에서 둥지를 찾아냈다. 어미 새는 먹이를 구하러간 모양이었다. 둥지 안에 알 세 개의 안전을 확인한 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가재를 놓아두었다. 숨이 채 끊이지 않은 듯, 집게발을 뗀 몸이 움직였다. 혹시나 버둥거리다가 돌 틈 사이로 감춰질지 몰라서 집게손가락으로 머리를 튕겨주었다. 충격이 가해졌는지 이내 잠잠해졌다. 가재는 새의 재단에 올려졌다. 가재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어미 새에게는 날개를 펼쳤다가 오므릴 수 있는 근육으로 자리를 할게다. 가재의 영양분이 곳곳에 스며들어 알을 품을 수 있는 체온의 정점으로 만들어질게다. 선영은 벗어둔 옷을 찾아 골짜기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산의 능선을 타고 자란 소나무들의 거침없는 자태가 아름다웠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비와 바람에 얹혀 서로를 어깨동무로 키 맞춤을 했을까. 경이로웠다. 어쩌면 선영이가 산사에 들어온 해답을 간접적으로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벗어 둔 옷은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받은 덕분인지 한 풀 꺾인 숨죽은 모습으로 다소곳해져 있었다. 열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팬티를 입었고 브래지어를 꼈으며 반바지를 입었고 민소매 티로 마무리했다. 간단한 절차 속에 엄숙함이 숨겨져 있었다. 야생에서 문명으로 귀환이었다. 그 시작은 자신의 섹스를 나뭇잎으로 가리는 미미한 출발이었지만 곁가지처럼 뻗어나간 창대한 결과물은 대단한 것이었다. 인류의 발전을 꾀하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기도 했다. 아마 드러낸 섹스보다 감춰진 섹스에 더 호기심과 적극성을 띄어 인류의 번성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선영은 문득문득 자신이 엉뚱하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러면서 웃었고 웃다가 고개를 젖혔다. 순간 명적암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거리는 이백 미터가 족히 되었기에 눈이 마주쳤다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없지만, 같은 방향으로 마주서서 보고 있었다. 뒷덜미에서 전류가 흘렀다고 느꼈다. 짧지만 강렬한 한 줄기 전류가 훑듯이 지나갔다. 남자는 마주서서 바라보고 있는 선영의 당당한 모습에서 기가 죽었는지 몇 번 뒷걸음치다가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 선영은 ‘누굴까’보다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을까’에 초점이 맞혀졌다. 알몸으로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던 야생부터인가 아니면, 그나마 다행으로 옷을 걸친 문명부터인가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그러면서 남자가 선 자리에 있는 소나무의 형상으로 알몸을 어느 정도 드러내었는지 윤곽이 드러날 것도 같았다. 둥지 곁에 둔 가재는 이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돌아온 어미 새의 요란한 날개 짓도 시큰둥하게 쳐다보며 골짜기를 타고 명적암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서산으로 기운 해가 하루치의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태풍 솔릭이 제주도에 상륙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떴다. 더위가 한 풀 꺾인다는 예감을 하며 선영은 방 앞에서 괜히 골짜기에 시선을 던졌다. 낮게 드리운 땅거미가 장관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