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좁은 어깨 주위에는 무수히 많은 사연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 새로움과 새롭지 않는 것, 고정된 것과 고정되지 않는 것, 그러면서 빛의 입자를 타고 활발하거나 나른하거나 동선이 불분명한 먼지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방안은 잠수함처럼 서서히 물밑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착각으로 선영에게 다가왔다. 쿨럭, 남자의 기침이 수면으로 한 번씩 떠올랐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가라앉았다. 손가락으로 뚫은, 창호지 구멍의 세상은 가난하고 궁색한 남자가 앙상하게 자리를 틀고 있었다.  그 이전에 화려하고 수려한, 한 세상의 뒤끝이었으면 하고 선영은 빌어주었다. 명적암의 구석진 방 하 나를 빌려 꺼져가는 삶의 이삭줍기를 하는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 앞에서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을까. 어쩌면 모든 것을 내려놓기 위해 찾아든 산사의 풍경은 더욱 더 삶에 대한 열망으로 미치도록 꿈틀되게 했을 것이다. 저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에 대한 희망과, 아궁이에서 피어오른 연기에 대한 비상은 남자가 이제 접고 접어야 될, 포기해야 할 삶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바라볼 ‘내일’인 것이다.  얼마나 오래 몰래 지켜보았는지 발이 시렸다. 남자도 오래 붙박이처럼 누워 있었다. 생사를 가르쳐준 것은 간간히 내뱉는 기침뿐, 저 방은 그렇게 식어있었다.  -처자, 거기서 뭘 해? 돌아보니 할머니였다. 멋쩍게 웃으면서 남자의 방 앞에서 떨어졌다.  -암수를 찾아 온겨?  -아이, 할머니도. 호호. 기침소리가 심해 혹시나 해서 들어다 봤어요. -젊은 사람이 속 깊게 병이 들었어. 쯧쯧. 너무 안됐지 뭐야. 쉽게 나을 것 같지도 않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심코 선영은 하늘로 시선이 갔다. 오락가락하던 태풍으로 내내 잔뜩 찌푸려있던 하늘이 높고 청명한 하늘로 변신해 있었다.  -할머니, 하늘 한 번 올려보세요. 마음까지 행복해집니다.  -그러게. 특히 명적암 하늘은 더욱 알아 주제. 어쩜 구름이 저렇게 또렷할까. 선영은 뒤꿈치를 들면 더욱 더 선명하게 보일 것처럼 마루에서 힘을 주어 허리를 세웠다. 담벼락에 앉아 있던 작은 새가 때맞춰 날아올랐다. 할머니가 마루에 걸 터 앉으며 박수를 쳤다.  -보라구, 그림이야, 그림. 졸다 깨어보면 한 세상인데 이런 그림과 마주한다는 것은 그 또한 행운이고, 처자, 그렇지? -네, 할머니. -또박 또박 대답도 예쁘게 하네. 좋은 시절을 가졌어. 자칫 딴맘도 먹지 말고 허투루 낭비도 말고 앞뜰에 베어둔 잣나무 장작처럼 제 역할에 충실혀. -네 할머니. 바깥이 소란스러웠는지 남자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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