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분명한 ‘나무아미타불’은 피부에 닿아 각질이 되고 소름이 되고, 잔털을 누르면서 서로의 결집체로 연결고리가 되고 있었다. 법진의 목에 힘줄이 더욱 선명해지는 시간을 틈타 산 그림자가 빠져나가고, 골짜기를 가로지르던 단풍이 순해지는 어디쯤에는 어둠이 마구 바닥으로 곤두박질하고 있었다. 화전민촌은 어둠에 고스란히 압사되었다. 그러나 너와 지붕을 이고 남은 삼나무 노송나무 소나무의 조각들은 낮에 떨군 햇빛을 기억하며 푸른빛으로 노인의 집안을 살뜰히 챙겨주고 있었다. 불길 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디딜방아는 양다리방아였다. 노인은 아내와 같이 올라서서 돌로 만든 확 속의 곡식을 찧을 때 얼마나 금슬이 좋았을까. 땀 흘린 만큼의 곡식으로 인생의 보람도 실어 방아채 앞머리 부분의 공이로 콩닥콩닥 한세월을 넘겼으리라. 불길은 디딜방아를 조명하면서 어둠속을 막바지처럼 버텨주고 있었다. 염불이 점차 꼬리를 물자 노인의 아내와 숯검댕이 아들의 비벼대는 손바닥도 빨라졌다. 법진은 물지게 쪽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동북방향에서 오른쪽이 둥근 반달모양의 상현달이 가슴 한쪽이 아리게 떠있었다. 문득 떡갈나무 속 노인이 궁금해졌다. 나무 향에 파묻혀 자신의 인생의 말미를 지켜보고 싶어 하는 촌로의 시선을 읽어보고 싶었다. 회한과 무상으로 가득한 노인의 생각에 정박하고 싶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노인은 풍경처럼 누워있었다. 모닥불이 만들어내는 밝음 안에 들어온 노인의 눈은 실눈으로 감겨있지 않았다.   법진과 아내와 아들과 모닥불과 고집스럽게 지켜온 화전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이해했다. 평성과 상성으로 넘나들었지만 염불은 느림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순간 법진의 눈에 엷은 어둠 안에서 또 한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놀란 기색 없이 침착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이 집안에서 다섯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스스로에게 다짐은 분명 있었다. 여자였다. 정상적이지 않는 허리를 가진 여자였다. 어둠속이지만 꼽추라고 생각되어졌다. ‘나무아미타불’에 생명을 불어넣어 느린 음을 타면서 생각의 한 오라기를 붙들고 물지게를 쓰다듬었다. 망자는 계곡물을 나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음을 덧붙였을까. 저 어깨를 누르는 고단한 무게를 버티면서 골짜기에서 계곡으로 경사지면 경사진 대로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일상으로 받아들인 인고의 세월이 널판 한 장으로 만든 등판에 매달려있었다. 가로로 댄 나무 막대기 양 끝에는 갈고리 쇠붙이가 달려 물통을 한 개씩 걸어 제법 만만치 않은 무게가 가늠되지만 망자는 어깨와 종아리로 매일 길러 날랐을 것이다.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부양가족을 위한 책임감은 끊어질듯 밀려오는 어깨의 통증을 이겨내도록 최면을 걸었을 것이다. 이제 법진의 염불은 삼 악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작은 소리로만 구성된 것이 일 악장이라면 작은 소리에 큰소리까지 더하였지만 느림을 바탕으로 한 이 악장, 작은 소리에 큰소리가 합쳐져 느리고 빠른 소리로 망자의 저승길을 도우는 삼 악장은 가슴 깊이에서 길러 올려 진정성과 염원과 기도가 어우러져 애간장을 녹이는 칠 부 능선과도 같은 자리에서 다다름의 예를 다하는 것이다. 어둠을 비끄러매고 끝없이 자신을 짓이기면서, 달빛이 진자리에 날아오르는 용솟음의 결정체를 만들기 위한 법진의 목탁소리는 고요를 깨워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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