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가득한 산속의 기운이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야멸차게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법진은 꼽추 딸의 다음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문틈은 조금씩 더 벌어지고, 반쯤 눈을 뜬 체 지켜보는 법진은 예측하지 못할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기침이라도 할까. 상체를 일으키며 깨어있다는 것을 알릴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온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벗은 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법진의 긴장은 극도에 달했다. 찬바람 따위는 아무렇지 않았다. 틈 사이로 들어온 달빛과 골짜기의 음울한 비명은 열린 방안을 휘젓고 있었지만 결코 신경을 긁진 않았다.
한발이 먼저 안으로 들어오고 이내 꼽추 딸이 방안으로 쓱 빨려들듯 들어왔다. 작은 신음 소리가 참고 있는 긴장감을 뚫고 밖으로 새여 나왔다. 방문이 닫치자, 실내는 짙은 회색에 무거운 적막감으로 납작 엎드렸다. 이제 실눈을 뜨고 쳐다보지 않아도 들키지 않을 정도의, 사물의 형체가 불분명했다. ‘나무아미타불’
그녀가 옷을 벗고 있었다. 불분명한 사물의 초점 속에서도 젖가슴이 출렁거렸고 유독 엉덩이가 둥글게 보였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일까. 어쩌면 이 상황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법진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외치는 울림, 강도, 악력, 열반, 해탈 그리고 목탁 소리에 의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징검다리는, 욕정의 장애물에 걸려 끙끙 거렸는데 차라리 갈등적 요소를 제거하고 싶었다. 한 여인의 갈망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그 거친 일상에 불 밝힌 등불 하나 건네주고 싶었다. 썩어 문드러질 하찮은 육신으로 한 여인이 세상 속에서 살아갈 힘이 된다면 기꺼이 주고 싶었다. 아무려면 이렇고, 아무려면 저렇고.
살과 살이 맞닿았다. 하늘과 땅이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은 골짜기의 새벽이면 가능했다. 깨어있고 명료해지는 골짜기에서 맞이하는 여명은 하나의 촉수로 만들어져 지극히 놀라움에 관통되었다. 그녀의 체온이 전달되고 숨소리와 타액이, 수십 년 전 깨달음에 이르러 해탈하고 싶었던 한 인간의 경지를 뒤바꿔놓고 있었다. 무수한 유혹에도 뿌리 깊게 흔들리지 않았던 불심이 화전민촌의 좁고 낡은 골방에서, 꼽추 장애를 가진 여자에게 무참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꼽추가 아니라면 더 버틸 수 있는 기세가 남아있었을 건데. 이토록 무장해제가 된 이유를 찾기엔 간단치 않았다. 연민일까, 자비일까.
두렵다. 그럭저럭 맞물려 틈새가 메꾸어졌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고 해도 법진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몸속 깊이 제 살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두렵다. 무언가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계속 헛발질로 휘청거리는 자신에게 실망했지만, 그녀가 품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더 좋았다. 큰 혹 덩어리를 등에 짊어지고 사는 그녀의 세상은 얼마나 어둡고 답답했을까. 잠시라도 자신의 세상을 떠나 법진이 이끄는 세상에서 더부살이를 할망정, 오래오래 제 속을 채워가면서 기지개를 켜듯 허리 꼿꼿하게 세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녀의 손이 법진의 가슴에서 머물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