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진은 잠결에 옥자의 존재를 확인하기위해 옆자리에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녀가 손에 닿지 않자 점점 비몽사몽하다고 생각했다. 한 때의 헛된 바램이 법진에게 흥건하게 엎질러진 것일까. 자신은 우물에 빠져 승복을 벗은 그대로의 알몸이고, 저녁과 어둠과 새벽을 헤쳐 나온 시간은 이미 그에겐 없었다. 화전민촌 어느 집에서 홀린 듯, 옥자라는 꼽추 딸과의 정사만 남아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워버리거나 달아날 수도 없는 어제라는 시간 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차원적 본능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피로에 지친 눈꺼풀은 무겁고 삶은 아득하고, 좀체 가늠되지 않는 방향이 퉁탕 거렸다. 졸린 눈을 천천히 뜨면서 어젯밤의 격랑의 시간을 되짚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마음속에 깊이 박혔던 부처가 뿌리째 뽑힌 이 참담함은 무엇일까. 입문하여 장중하고 엄숙한 삭발의식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었다. 입산 출가자가 처음으로 입문을 알리는 의식으로 불타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기도 했다. 삭발식이 있는 날, 법당에서 사찰에 온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참회진언 옴 살바모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불자야. 모든 인연이 구즉되어 다같이 경축하며 감로수 머리를 축여 무명초를 깎았으니 심지가 청량하고 번뇌가 불침일세 육정과 육진이 영멸하고 범행을 중장케 되었도다. 이것은 다생의 선인이요 일조일석의 우연이 아니리라. 나무보현보살마하살, 나무보현보살마하살, 나무보현보살마하살. 같이 살며 사랑하고 생각하여도 때가 되면 반드시 헤어집니다. 이렇게 무상은 잠깐임을 알았으니 저는 이제 해탈을 구하나이다. (삼배) 머리 깎고 지절을 지키리이다. 세상에 애착을 끊었나이다. 출가하여 불법을 배우고 펴서 일체중생 제도하기 원하옵니다. (삼배)』 성직자와 세속인을 구별하는 기준인 동시에 삭발의식은 세속적인 범죄를 범하지 못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더 헌신적인 삶을 시작하는 관문이며 종교의 높은 가치를 일깨우는 깨달음의 수단이기도 했다. 소속감과 차별화에 방점을 둔 승려로 입문하는 의식이며, 그 후에 자격을 제대로 갖춘 승려가 될 때 다시 삭발식을 거행하였다. 법진은 순간 자신의 삭발식 풍경 하나하나가 소스라치게 그려졌다. 삭도에 의해 한 올 한 올 잘려나가면서 마침내 아래로 깔고 있는 시야 속에 뭉텅이로 확대되어 들어 왔을 때, 방향을 잃은 정신적인 혼란으로 비틀거리게 하고 있었다. ‘괜찮아’ 누군가 법진에게 속삭여주었다. ‘충분히 예상했잖아. 이런 기분’ 텀벙텀벙 한 움큼씩 모여 있는 머리카락을 보며 와락, 삶의 무게를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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