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뢰는 기운이 성(盛)한 사람이었는데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적들과)더불어 싸우기(挑戰) 원했지만 정대임이 말하기를 “병(법)에 경솔한 움직임을 경계하니 조심해서 가볍게 움직이지 마시오” 하고, 이에 군중(軍中)에 명하여 하나일 자(一字)로 진(陣)을 정돈하여 모두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고, 북을 치고 뿔피리를 불어 한가로움을 보이자 적이 바라보고 더욱더 태만해졌다. 이에 권응수가 말을 달려 흑단 옷을 입은 왜장을 (화살을 쏘아)죽이자 성위에 올라가 있던 적들은 곧바로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해질 무렵(晡時) 많은 적들이 아군을 향해 조총(鳥銃)을 쏘는데 나르는 탄환이 마치 비 오는듯하여 아군이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3명이었다. 날이 저문 후에 적들이 횃불을 들고 왕래하며 서로 모의하는 모양이더니 한명의 중(僧)이 줄을 타고 내려왔는데, 그는 곧 불국사의 중으로써 포로로 잡힌 자였다. 담(湛)이 그를 데려다가 적의 정세를 물어보니 곧 말하기를 “적이 내일 장차 우리 아군을 공격하여 죽이려고(攻滅) 힘을 모으고 있어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 나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정대임이 이 말을 듣고 이날 밤 2경(二更)에 군졸(軍卒)들에게 명령하여 긴 사다리 등 성벽을 넘는 기구들을 동서문 밖에 비치하도록 하고, 또 명하기를 “세 번 북을 치고 뿔피리를 불면 여러 장사(將士)들은 북(鼓)으로 응답하고 일시에 성안으로 들어가시오”(라 하고) 또 정천리로 하여금 감사졸(敢死卒) 500명을 거느리고 마현산에 복병(伏兵)하여 있다가, 내일 아침이면 이리 이리하라(如此如此)고 하였다. 드디어 권응수와 더불어 약속하기를 “적들이 그대(가 지키는)문을 범하면 내가 너의 목을 벨 것이고, 내가 (맡고 있는)문을 (적들이)범하면 네가 나의 목을 베라”(고하였다) 급기야 권응수, 신해, 홍천뢰, 박의장, 한척, 주윤신 등은 병사들을 이끌고 서북문을 에워싸고, 정대임과 점담, 정세아, 김윤국, 최문병, 최대기, 조희익, 신준룡, 이번, 조덕기 등은 동남문을 에워쌌다. 27일 해가 뜰 무렵(平明) 북을 치면서 나아가 곧바로 성벽아래에 이르러 먼저 남문에 다다르자 적병들이 성(벽)위에 나열하여 총을 쏘며 아우성을 쳤다. 우리 군사들은 각자 긴 사다리를 쥐고 방패를 짊어지고 성(벽)에 다다라 성벽을 넘을 듯 시늉을 하자 왜장 몇 명이 은 투구와 금가면을 쓰고 비단 전포(戰袍)를 입고 성(위로) 올라가 문루(門樓)위에 앉아 부채를 휘두르면서 무리들을 독려하여 (성)문을 열고 병사들을 내 보내 (우리 군사들을)맞이하게 함이, 아마도 우리병사의 수가 적은 것을 보고 단번에 짓밟고자(蹂躪)함이었으리라. (그리하여)우리 장사(將士) 수백 명이 달려 나가 적의 중견(中堅)을 쳐서 칼(처럼 날카롭게) 진격하자 (왜)적들도 다친 자 또한 많았다. 조금 후 왜적의 기마병 수천 명이 또 성안으로부터 일제히 총을 쏘자 아군은 적이 두려워서 나아가지 못하는데, (정)대임이 분발하여 자신의(생명을) 돌보지 아니하고 여러 장수들을 독려하면서 친히 칼을 휘두르고 말을 달려 먼저 적진에 들어가 종횡(縱橫)으로 치고 달리니, 칼 빛이 번개 같아 적병들의 죽고 상한 자들이 마치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았다. (이에)적병들이 크게 문란하여 대오를 잃고 크게 어지러워 법도를 잃어 향할 바를 몰라 저희들끼리 서로 짓밟아 시신 넘어짐이 마치 삼대(麻)와도 같았으며, 아군이 승세를 타고 진격하자 감히 그 (예)봉(鋒)을 감당하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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