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속세와 이속離俗의 경계였다. 희로애락, 시기질투, 중상모략이 가득 찬 사람들 안에서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종교적 세계 안으로 들어와 고치를 만들어, 자신의 애벌레 시절을 치열하게 버티라는 준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푸른 날개로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입적의 화두를 얹어 준 셈이다. 처음 삭두에 의해 잘려진 머리카락의 무게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날이 선 삭두가 온 몸의 세포를 일제히 깨웠다. 감정과 이성의, 균형의 조화를 깨트렸다. 맨 처음 잘려진 머리카락 한 묶음이 여지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목에 하얀 천을 두른 아래로 빼꼼히 나와 있던 발등에 쿵하고 누르는 거대한 무게는, 이제껏 퉁탕거리며 살아온 삶의 지축을 흔들었다. 그러나 발등은 처참히 으깨어지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다. 그 무게와 강도라면 충분히 그려질 그림이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전부라고 생각해왔던 삶이 문을 닫고 새로운 삶의 문을 열어 놓는 어깨 두드림과 같은 배려일 것이다.
어쩌면 죽비를 세번 때려 느슨해진 정신을 일깨워주는 숨은 뜻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저 간결하면서 마음을 쓸어담는 파열음을 죽비는 말해주고 있었다.
예불 의식에 참여한 수행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지는 삭발은 붓다를 공경하고 따르며 속세와 인연을 끊어 정진하는 참 모습의 발원지였다. 제각각 법당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두 손을 모으고 줄을 지어서 관습에 따라 모인 신자들의 낮은 탄성도 어우러져, 얼마나 이 시간에 대한 의식이 놀랍고 비중 있는지 일깨워주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어깨를 낮게 하여 받아들이는 가난한 생의 마음 안에 옷깃을 스친 인연 줄이 토막 나고 잘려졌다. 그 대답은 발밑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무성한 머리카락이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다짐도 없이 자신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고타마싯다르타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걷고 싶다는 치기어린 도전과, 그런 막막함으로 앉아 있었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촉촉하게 눈물이 고여들었다. 눈만 껌뻑이면 이내 주먹만한 눈물이 떨어질게 분명했다. 애써 숙이고 있는 머리를 약간 들어서 이마에 주름을 잡으면서까지 눈을 치떠, 한목소리로 깊어진 가을 산을 노려봤다. 아궁이에서 혼신의 힘으로 타오르는 군불덩이들이 어우러져 눈부시고, 찬란하게 단풍으로 뒤덮고 있었다. ‘씨발’ 법진의 입에서 생각지도 않게 튀어나온 말이, 자신도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혹시 삭발해주는 스님은 듣지 않았을까하는 염려로 조심스럽게 가슴을 펴고 머리를 들었다. 스님과 어린법진의 눈과 마주쳤다. 그때 스님은 넉넉하게 웃고 있었다. 비탈진 곳에 바람의 방향으로 누웠지만 청청하게 잎을 피운 소나무처럼. 법진은 귓불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스님은 부드러운 음성은 마치 잎 새를 스치는 바람소리처럼 들려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따라 올지라도 그에 맞는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지 못할 때 적잖은 실망으로 마음속에 있을 말이, 혹은 행동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담아두지 마세요. 먼 바다로 나간다고 생각하고, 정박했던 배의 돛을 힘차게 올린다고 생각하고, 파도를 따라 바다를 깨운다고 생각하고, 거친 구도의 길에서 절규 같은 목소리 하나를 버렸다 생각하고 괘념치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