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럽게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스님의 눈에 풀 섶에서 모습을 드러낸 너구리 한 쌍이 목격되었다. 곧 못 본 척 시침을 떼면서 법진의 삭발에 열중했다. 삭발식에 참관하는 수행자들도 머리를 내어준 법진도 정적 속에 자신들을 가두었다. 혹여 인기척에 의해 달아나지 않을까하는 배려로 숨을 참는 사람도 있었다. 가을은 놀랍도록 풍성하고 놀랍도록 충만한 씨줄 날줄의 인연으로 가득했다. 먹빛이었다가 주홍빛이었다가 서로의 관계에서 보탬이 되고 싶어 했다. 숭숭했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져 혹은 바람에 구르거나, 낙엽에 묻히거나 이제는 돌아설 수 없는 선택의 첫 장을 법진은 펼쳐들었다. 다시 눈물이 뚝 바닥에 떨어졌다. 스님은 너구리 한 쌍을 쳐다보지 않고 작은 미소로 말을 이어갔다. -저 놈들이 야행성이지요. 그 목소리는 어느 나무 그늘에 잠든 편안함이었다.-보통 낮에는 숲이나 바위 밑이나 자연 동굴에서 잠을 자기 일쑤인데 오늘 횡재수가 있었는지 저 놈들을 보게 되네요. 불자의 삭발식에 나타난 것으로 봐서 쇠심줄 같은 인연에 화답하려는 의도인지 아무튼 좋은 조짐을 예견한 듯합니다. 두상이 참 참합니다. 스님으로서는 제격입니다. 하하하 스님은 수행자들을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저 놈들은 경계심이 부족하지요. 거기다가 짧은 다리에 큰 몸통으로 빨리 달아나지 못하지요. 다소 둔한 외모로 겉으로는 어리숙하게 보이나 속은 엉큼한 데가 있는 동물로 오해를 사기도 하지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하하하. 여전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까? 스님의 질문에 수행자중 한사람이 말이 새여 나가지 않게 입을 가리며 대답했다.-쳐다보고 있을 뿐 아니라, 쟤들끼리 서로 대화도 주고받고 있는데요.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웃음소리에 놀란 너구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다시 풀 섶으로 모습을 감췄다. 법진의 첫 삭발식의 풍경은 이러했다. 불교에 입문하기 위한 의식 속에서도 작은 소요와 동요가 있었지만 명적암의 주지가 되기까지 참고 견디고 이겨내는 바른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화전민촌에서 살아있는 노인의 입적에 대한 열망을 도와주었고 우물에 빠져 승복을 벗는데서 부터 불씨는 시작되었다고 사유되어졌다. 궁극적인 고요함은 과연 찾아올 것인가. 번뇌의 불을 꺼버린, 수행자의 처음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열반과 경지와 깨달음의 요원한 길에서 법진의 행동은 경솔했다. 적어도 그 생각이 앞서자 한없이 자신이 미워졌다. 잘 개켜진 승복이 문만 반쯤 열린 틈사이로 들여 놓아졌다. -곧 아침상을 가져 오겠습니다. 얼굴을 마주하기가 민망했는지 문 밖에서 꼽추 딸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법진은 이불을 감싸고 있는 알몸을 드러내며 승복으로 위선을 감추었다. 어젯밤 뒤엉켜 단물을 빼먹듯 서로를 탐닉하던 장면이 동글동글 살이 붙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