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진은 산허리 골짜기가 선물하는 풍경에 매달리지 않고 하늘과 산과 너와지붕위의 노인과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과 아들의 얼굴이 확대되어 눈부시게 다가왔다. 짐짓 인간의 세상사가 옹골차게 가슴팍에서 쩡쩡 울리고 있었다.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노여움이 그들의 얼굴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쓰여 있었다. 저 질긴 생명력으로 지붕을 지켰을 것이다. 곧 자신의 몸뚱어리를 외부로부터 굳건하게 지킨다는 의미에서 단단하지 못한 너와를 교체하며 결속력을 다졌을 것이다. 삼나무 노송나무 소나무 등의 얇은 나무 조각을 그들이 정한 차례대로 지붕 위를 비끄러맬 때, 꿈꾸는 세상은 그들의 품속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지붕을 엮고, 지붕을 청소하는 행위야말로 그들은 한공동체의 분명한 일원으로 자리하게 된다고 느꼈다. 아프거나 고통스럽거나 괴롭다는 번뇌의 요소를 정확히 떨쳐내는 의식 같기도 한, 지붕위의 여타의 작업은 법진으로 하여금 참으로 우러러 보게 하고 있었다. 가난한 일상에 찾아든 크고 우람한 거인의 노인과 거인의 아들이 지붕위의 곳곳을 재정비하며 그들의 삶에 가일층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음을 깨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불교의 최상이라면, 마음속 너나 없는 인간에게 잠자고 있는 번뇌를 끊어내는 수순으로 그들은 지붕위의 작업을 택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알까. 저 자신의 도도함을, 깜깜한 숲을 밝히는 우렁찬 몸짓을.-스님 가실라구예? 곧 누이가 올 건데 만나보시고 가시지예. 아들의 얼굴에 이번에는 너와 부스러기가 묻어있었다. 숯가마에선 숯 그을음이 묻어있었고, 칠칠맞다고 생각되어져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또 찾아들겠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쳐다보지도 않고 노인은 망치질을 하면서 법진의 마음을 흔들거리게 했다.-인연은 쉽게 놓치 못하는 기라. 하물며 옷깃만 스쳐도 심상치 않는데 몸 섞은 인연은 오죽하겠냐. 스님 그렇지예? 옥자가 쬐끔만 있으면 올 낀데 보고 가지예. 아들은 노인과 법진을 번갈아 쳐다보며 여차하면 지붕 밑으로 내려가 잡아야할지, 자신의 다음 행동을 망설이고 있었다. 낮은 봄 하늘은 왜 저토록 찬란한지, 툇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툇마루 용도가 그렇듯, 갑작스런 온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완충작용을 해주는 역할처럼 만나보고 미련을 털어낼 수 있는 서로의 시간을 나누어가지는 것도 바람직 할 것 같아 법진은 기다리기로 했다. 노인의 망치소리는 화전민촌을 들썩이게 했다. 아들은 낡은 너와를 들어낸 자리에 눈대중으로 비슷한 크기를 노인에게 전달하였다. 아들이 건네준 너와의 크기가 듬성듬성 빈틈을 채우지 못하고 차이가 있더라도 군말 없이 작업은 계속 되었다. 공간이 커도 땜빵 할 모든 준비가 되었다는 약속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있지 않아 노인의 빈자리를 채울 아들에게 스스로 깨우칠 자연스러운 대물림 안에서 행복해 보였다. 오래전 노인의 아버지가 그랬듯, 조급하지 않는 세상 속 균형을 이번에는 노인이 아들에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법진이 앉은 높은 툇마루는 아궁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 툇마루 밑 아궁이와 눈이 마주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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