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마주친 아궁이는 잔뜩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상처를 입고 구석진 곳을 찾아든 들짐승처럼 더 이상의 공격보다는 방어적인 성향으로 눈빛만 번득이고 있는 듯했다. 물러설 곳도 몸을 숙일 곳도 없는, 절벽 끝에 다다른 비장함도 느껴졌다. 말없이 장작을 태우고 뿜어낸 열기로 자신을 담금질하던, 아궁이의 우렁찬 외침은 고요하지만 충분히 그 마음이 전달되었다. 법진도 저런 모습으로 툇마루에서 지금 육신을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루하고 나약한 중생으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돌고 돌아 윤회로 이어진 영혼이 머무른다면 아궁이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한 때는 인간일 수도 있는, 한 때는 너와조각일 수도 있는 윤회는 해탈할 때까지 반복한다.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툇마루 밑에서 아궁이는 자리보전을 하고 있지만, 전생에는 아마 저 들판을 가로 지르던 힘찬 야생마였을지 모른다. 갈퀴를 휘날리고 용트림하듯 드러나는 허벅지의 근육으로 세상과 달리기로 소통하는 야생마의 생을 접고, 눈에 띄지 않는 툇마루 밑에서 다음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지옥과 축생과 아귀와 인간과 수라修羅와 천天:神으로 나누어지는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대한 본질이 여기 있는 셈이었다. 어쩌면 어젯밤의 행동이 승단에서 추방되어 비구比丘의 자격이 상실되는 무거운 죄에 해당되지만, 한편으로 가난한 영혼을 가진 중생에 대한 몸보시로 읽혀진다면 구제받지 않을까. 공양 중에서도 몸 전체를 불태우는 소신공양이 최고의 공양이라고 붓다는 설법했다. 법진은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실체를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변명하기 위한 타성과 적절하지 못한 논리로 접근해 오는 또 다른 가증스런 자신을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시 말해 이제는 돌아 갈 곳이 없다고 생각되어졌다. 설사 돌아간다고 해도 받아줄 곳이 없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이었다. 순수성에 버금가는 초심이 법진의 속에는 텅텅 비어 있었다. 무릇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헛발로 휘청거리고 있는, 밑바닥을 절실히 통감하는 일련의 상처가 법진에게 오래 멈추질 않는 울렁증처럼 찾아왔다. 툇마루 밑 그을음이 전부인 아궁이에게서 시작된 감정의 기폭은 쉽게 멈추질 않고 아리고 쓰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의 일이었고 지금은 축복인양 밝은 대낮이 아니던가. 법진은 염주를 움켜잡았다. 염주 알을 굴리며 명치끝에 맺혀있는 앞뜰에 흥건한 햇살의 단단함을 눈으로 찾아 나섰다. 능금을 쪼개 반으로 갈라놓듯, 스스로의 반쪽과 반쪽에 겉과 속을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조금은 헐렁해서 살만하다는 자신을 찾아 손끝에 닿는 염주 알을 굴리며 눈부신 시간 안에 자신을 욱여넣었다. 인생은 통속하구나. 노인과 아들은 여전히 지붕위에서 너와 교체작업으로 분주했다. 교체된 너와는 여지없이 지붕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마치 짜증스런 작업의 화풀이 식으로 내던져지는 너와는 바닥에 닿자 모서리에 부딪혀 튕겨져 오르거나, 몇 조각으로 갈라지거나 거저 따끈따끈한 햇살의 열기쯤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진득한 참을성이 부족한 아들의 기분과 한 통속이 되어가고 있었다. 법진의 눈에 텃밭에서 돌아오는 노인의 아내와 옥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과 빛의 경계로 애써 갈라놓았던 마음이 다시 스물 스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