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으로 본 세상 -살아 있는가. 살았다면 언젠가 만날지도, 아니면 바람을 가운데 두고 무수히 스쳤을지도. 그는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걸음으로 앞서갔다. 그래서인지 자욱한 안개를 걷어낸 어린 날의 기억 속에 반드시 불러보고 싶은, 우상열을 찾아 나선 마음으로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를 불러내자. 오십년 전의 어느 날로 돌아가 그와 마주했던 선명한 기억 속에서 때 빼고 광낸 우상열을 만나보자. 고만고만한 집들 사이에서 우뚝 단포 극장이 들어섰다. 주변은 시장 좌판으로 들썩 거렸고 흥청거리는 사람들 주머니 속을 주판질하던, 어느 졸부가 과감히 투자하여 이층건물의 극장이 떡하니 들어섰다. 열 살 무렵의 우리에겐 사건이었다. 기껏해야 딱지치기에 비석치기, 구슬치기, 땅따먹기, 숨바꼭질이 무료함을 달래줄 최상이었는데 극장이라니. 신영균, 박노식, 도금봉, 허장강, 신성일, 최무룡, 구봉서, 김희갑, 장동휘, 최은희, 엄앵란 등등의 이름을 극장 간판에서 줍기 시작했다. 마치 추수가 끝난 논바닥을 훑고 지나가며 차곡차곡 챙긴 이삭들처럼 그즈음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배우들의 대사와 동작을 흉내 내며 핏대를 세웠다. 조금 더 ‘누구답다’라는 표현에 목말라하며 열 살에 맞지 않는 선 굵은 연기에 최선을 다했다. 환풍기 망을 감쪽같이 떼 내어 우리가 극장 안으로 몰래 들어간 뒤, 흔적 없이 다시 망을 세워놓는 치밀함을 우상열은 간단하게 처리했다. 곧 우리 중에 ‘대가리’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된 셈이었다. 몇은 당연히 감탄했다. 잔머리를 어떻게 굴러 맨 앞자리에 서게 되면 난관과 역경에 부딪힐 때마다 그의 잔머리를 필요로 했다. 자연스럽게 그 존재를 인정하게 했다. 머리 땜통이 있거나 어설프게 만든 나무젓가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꼬질꼬질한 형색이라 해도 상관없이. 우상열은 항상 선두에 섰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의존도는 심해졌다. 그렇다고 불신과 불만은 없었다. 선두에 서본 사람은 누구나 짐작 가능하게 하는 위험 요소들로 가득했다. 가령 환풍기 구멍에서 예기치 못한 쇠붙이에 상처가 나더라도 이내 돌멩이로 쾅쾅 두드려 납작하게 한 뒤, 자신의 상처는 맹수처럼 혀로 핥거나 침을 뱉는 것이 전부였다. 전진과 후퇴의 빠른 판단이 우리에게 패배를 최소화 할 수 있으며, 승리의 기쁨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알았다. 열 살의 우리에게 찾아온 변화의 물결은 한 단계 올라서서 또 다른 세상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옆 동네 창하에는 단기 사관학교에서 3사관학교로 규모가 확장 되었다. 곧 부대는 커졌고, 양성된 장교와 사병들로 군인들은 넘쳐났다. 그러자 주변에는 곳곳에 방석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석을 깔고 마시는 안방술집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과 여자로 제복 속에 갇힌 객지의 외로움을 유혹하고 있었다. 열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상열은 재미있는 놀이라고 인식 되었는지 우리를 데리고 괜히 술집 주변을 맴돌며 죄 없는 전봇대를 툭툭 걷어차고 다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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