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과 방석집 골목은 더 이상 열 살에 맞는 놀이로 뛰어다니는 우상열로 묶어두지 않았다. 구슬은 단포다리 아래로 흐르는 샘 강에, 필요이상으로 팔을 뻗어 보기 좋게 와르르 쏟았다. 그것도 다리위에서, 샘이 두드러지게 솟아나는 가장자리로 던져진 구슬의 행방을 궁금해 하는 우리에게,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하는 묘한 힘을 선물했다. 우상열은 혹시나 구슬에 눈독을 들이는 우리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간접적으로 한 셈이었다. 그때 내려다보고 있는 샘 강의 물살은 왜 그렇게 도도했는지 왜 그렇게 푸르고 깊게 느껴졌는지 저마다 열 살의 무게로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트럭이 지나갈 때면 단포다리는 쿨렁쿨렁 요동을 쳤다. 그럴 때면 우상열은 단포다리가 오줌 마려워서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우리의 구슬까지 몽땅 모아서 다리위에 던져버린 그날도 다리는 오줌이 자주 마려운지 쿨렁쿨렁 두려움으로 떨게 했다. 그러나 함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우리를 데리고 앞산으로 올라갔다. 우상열의 동선에 기꺼이 참석하고 있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가급적 뒤처지지 않고 그의 걸음에 맞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같은 일행으로 남들에게 비춰지는 것이 사뭇 대견스러웠다. 다음에 이어질 행동과 다음에 뱉을 말이 항상 우리의 촉수를 건드렸다. 앞산은 산길이 나있어 열 살에 나이에 맞는 높이로 적당했다. 솔방울 숙제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앞산을 올라 포대에 담아 아래로 굴러 내렸다. 토사로 뒤덮인 중턱은 신기하게도 막힘없이 굴러가 하산한 우리와 내려온 포대는 만나곤 했다. 우상열은 정상에 우뚝 섰다. 솔방울 숙제가 없으면 좀체 올라오지 않아서인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멀뚱멀뚱 거리고 있을 때, 불룩한 주머니에서 딱지를 꺼내 산 밑으로 팔매질 하듯 던졌다. 바람이 펄럭 일었다. “봤지? 더 이상 애기 짓은 하지말자.” 그 말은 곧 우리의 ‘애기 짓’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더 이상 구슬과 딱지에 매달린 다면 왕따를 각오하라는 겁박이기도 했다. 약간의 눈치를 우리는 교환했지만 이내 따른다는 분위기로 전환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장은 누가 뭐래도 우상열이었기에. 빠른 판단력과 막힘없는 추진력과 굴하지 않는 용맹성은 우리의 눈앞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우리의 놀이터는 극장과 골목이다. 큰물에서 놀아야 어른 대접을 받는 거야.” 이제껏 놀던 작은 물에서 큰물로 입성하는 계기를 분명하게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여기에서 빠지고 싶다는 놈, 지금 빠져도 좋아. 말리지 않을 테니. 그러나 후회하지마라. 다음에 혹시 마음이 바뀌어 들어오고 싶다고 떼를 써도 절대 받아주지 않을 거다. 단 누구에게도 극장과 술집골목에서 몰려다닌다고 얘기하면 안 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은 입 싼 놈이야. 전부 알아듣겠지?” 우리는 열 살 나이에 맞지 않는 말솜씨에 놀라고, 우리만 간직해야하는 비밀을 제공해준 우상열의 존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앞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걷던 비포장도로의 뽀얗게 날리는 먼지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우리는 비밀을 품은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으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