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극장 문이 열렸다. 웅크리고 있던 밝은 빛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밖에 있다가 상영 중인 극장 안으로 들어오면, 사물을 분별하지 못해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힌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상열의 손짓에 의자 밑으로 침착하게 몸을 숨겼다. 범호였다. 씩씩거리면서 다급한 상황속의 움직임이 분명했다. 얼굴 표정은 볼 수 없지만 몸짓은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사실 가까운 곳에 의자를 번쩍 들어 벽에 내동댕이쳤다. 벽에 부딪힌 철제 의자는 중저음의 마찰음과 함께 형편없이 찌그러져 나동그라졌다. 우리는 서로 몸을 움츠렸다. 미친 개처럼 날뛰는 범호의 모습을 종종 보았지만 오늘이 최대치인 것 같았다. 휘어지고 부러진 철제 의자를 붙들고 몇 번 악을 쓴 범호의 손에 다리 하나가 잡혀져 있었다. 그리고 공중으로 붕붕 휘둘러보고는 털을 바짝 세운 싸움닭처럼 밖으로 튀어 나갔다. 우상열은 밖에 싸움이 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우리를 불러 모았다. -범호 아저씨가 단단히 뿔났어. 싸움이 한바탕 붙을 모양인데 우리 그리로 가자. 의자 밑으로 몸을 숨겼던 우리는 무릎이나 팔꿈치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앞장선 우상열을 따랐다. 극장 밖에는 이웃마을에서 온 다섯 명의 청년들과 범호가 마주보며 으르릉 거리고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가급적 그들의 행동반경에 방해가 되지 않을 거리에서, 몇은 앉거나 선채로 영화보다 재미있는 싸움구경의 기대감을 가졌다. 이웃마을에서 공짜 영화를 챙기기 위해 한번 씩 얼굴을 내밀던 그들이었다. 기도로, 극장입구를 지키던 범호의 입장에서는 공짜로 들여보내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 좁은 바닥에서 한사람을 봐주면 또 한사람을 봐주어야하는 현실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자신의 월급과 새로운 영화 상영이라는, 소신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번번이 입장이 막혀 돌아갔던 그들은 칼을 갈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응원군도 더 가세하여 범호를 찾아와 마침내 마주보고 섰다. -니가 그렇게 막아 세우던 극장 꼴좋다. 문 닫았잖아. 너도 이럴 줄 몰랐지. 인심이라도 썼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았을 건데, 범호야, 너는 아무래도 좀 맞아야겠다. 그땐 순경도 너 편이었지만 이젠 편이 없네. 범호가 핏줄이 툭 불거지도록 움켜지고 있는 의자다리만을 의지하기엔 숫적으로 불리하게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범호를 믿었다. 탁 트인 공간에서 맞짱 뜨면 삼대일 까지, 극장 출입구는 십대일 까지 자신 있다면서 환기통으로 숨어들어간 우리를 모아놓고 주먹자랑을 해오던 범호지 않는가. -무기를 든다면 다섯 명 한꺼번에 덤빌 거고 그렇지 않다면 한명씩, 오케이? 서부영화를 본 덕분에 우리도 오케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범호가 어떻게 선택할지 궁금했다.-오늘 울 아버지 제산데 딴 날 맞짱 뜨면 안 되나? 이건 뭐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우리가 들어도 너무 궁색하게 들렸다. 그러자 아까 기세등등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약간 주눅 든 범호의 모습에서 승리를 장담한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범호가 쥐고 있는 의자다리마저 의식하지 않았다.-그러니까 있을 때 깝죽거리지 말지. 넌 아무튼 좀 맞아야겠어.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7-02 05:38:33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