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간신히 피했지만 박치기의 공격을 받은 범호는 간담을 쓸어내렸다. 질 때 지더라도 박치기로 나가 떨어져 쌍코피를 쏟으며 매가리 없이 지긴 죽기보다 싫었다. 박치기의 대비는 솔직히 없었다. 기껏해야 멱살잡이로 낑낑댈 때 무릎관절치기나, 멱살 잡은 엄지손가락 비틀기로 승부의 명암이 드러나 자신의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리를 유지하면서 날아오는 박치기와 주먹질과 발길질은 이제껏 싸워보지 못한 형태로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범호는 당황하는 얼굴표정을 들키기 싫어서 동작이 큰 돌려차기로 상대에게 파고들었다. 바지가 찢어졌지만 그다지 동작의 선이 죽지 않고 중간정도의 원을 그리며 청년의 목젖을 스치고 지나갔다. 의외의 급소를 친 것이다. 청년은 목을 움켜지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통통 튀어 올랐다. 얼굴을 노렸을지 모르지만, 목젖에 충격을 가한 발길질은 흔들림 없는 자세로 안착을 하고 곧 그다음 공격 자세를 취했다. 범호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우리는 범호 바지가 찢어져 꽃무늬 팬티가 밖으로 빼꼼 보여도 웃지 않았다. 어젯밤 몸을 섞은 술집여자의 팬티를 입고 나왔다는 것을 쉽게 짐작하고 있었다. 늘 우리에게 그전에도 날마다 다른 팬티로 무용담처럼 침을 튀기며 얘기해주었으니까. 목젖을 움켜쥐고 캑캑대는 청년 주위로 네 명의 청년이 걱정 반, 우려 반의 얼굴로 주위를 감쌌다. 범호의 돌려차기의 정확성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소문만이 아닌 실력을 눈으로 직접 목격을 하고 이웃마을 청년들은 캑캑이와 뒤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의외의 반전에 힘을 얻은 범호는 필요 이상으로 우리 앞에서 씩씩거렸다. 튀어나온 꽃무늬 팬티를 추스르며, 몇 번의 돌려차기 자세를 취하기까지 했다. -봤지? 누가 내 돌려차기에 맞아볼래? 김일의 박치기도 가볍게 피하는 거 봤지? 난 타고난 싸움꾼이야. 오늘 입증된 거고. 그렇지? 우상열이 다가가서 레슬링 심판처럼 한손을 치켜들어주었다. 범호는 꽈배기 사먹으라며 삼십 원을 주었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쳤다. 범호가 부러뜨려 가지고 나온 의자다리를 쥐어들고 우리 중 누군가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 두고 나왔다. 범호가 더 있고 싶어도 바지를 꿰매야 한다며, 자리를 떴을 때도 우리에게는 아까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헤어지는 마음을 붙든 것은 삼십 원 꽈배기 유혹이 더 컸다. 그러나 최종적인 우상열의 결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다음에 사먹자. 돈은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 내 주머니에 있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안전 빵이야. 그러면서 주머니로 들어간 것이 어림잡아도 몇 백 원 될 것 같았다. -상열아, 저번 것은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꼭 꽈배기 사먹자. 모두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 거렸다. 우상열의 주머니로 반쯤 들어가려던 돈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은 듯 멈췄다. -안 그래도 이번에는 너희들 꽈배기 사주려고 했어. 꽈배기 사러가자. 시장 골목의 끝에 꽈배기 공장이 있었다. 덜컹거리는 그물망 받침대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꽈배기들이 라인을 타면서 구워져 나오는 것을 유리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거지처럼 유리문 앞에서 기웃 거리지 말자는 우상열의 말에 항상 돌아서 다녔다. 오늘은 어엿한 손님으로 당당하게 유리문 앞에 서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