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에게 찾아온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시월로 접어든 선선한 날씨에 우린 무언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때 우상열이 앞으로 나섰다. -서부 총잡이 놀이를 할까? 서부영화를 몇 번 보고난 뒤, 그 나이에 맞는 총싸움놀이를, 뭐 대단한 놀이인 것처럼 포장하며 말하길 좋아했다. 가령 빨간마후라 비행기놀이라든지, 돌아온 외팔이 칼싸움이라든지 서로의 존재감을 높여주는 말로 우상열은 우리와 차별화를 두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지만 곧 우리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장난감 총도 귀하던 시절, 기역자로 꺾인 나무 막대기 하나면 충분했다. 다만 권총인지 장총인지 따발총인지 명확하게 구별이 되지 않아, 급할 때는 이것저것 넘나들며 소리를 꽥꽥 지르곤 했다. 우상열이 심판이었다. 먼저 쐈다, 먼저 쐈지만 피했다, 피했지만 팔에 맞았다, 오른 팔을 맞았는데 계속 오른손으로 총을 쏠 수 없다, 머리를 안 숙였으니 누가 봐도 넌 죽었다. 우상열의 판정에 아무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죽은 놈은 구석에 쳐 박혀있었고, 다리에 맞은 놈은 절뚝거리면서 총싸움은 계속되었다. 편이 갈라져 약삭빠르게 몸을 숨기거나, 부상자나 사망자가 발생하더라도, 극장을 한 바퀴 돌고나면 서부총잡이 놀이는 끝나있었다. 대충 한나절은 걸렸다. 그날도 극장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총싸움 놀이에 열을 올리다가 정문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에게 우상열은 새로운 난코스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영사실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통로 역할을 해주던 계단이 밖에 나와 있는 것을 본 우상열이, 죽거나 다치거나 간신히 살아남은 우리에게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저 계단에 올라가서 창문을 짚고 오는 애들은 각자의 집으로 갈 수 있어. 우리 중에 겁쟁이는 없겠지? 두말하면 잔소리지 하는 표정으로 같잖게 계단을 쳐다봤다. -역시 너희들이 자랑스러워.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줄게. 우상열의 움직임은 짧고 단호했다. 계단으로 성큼성큼 오르던 우상열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받아들였지만 몸을 낮추고, 창문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우상열의 몸짓이 예사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계단 밑으로 모여들어 낮은 목소리로 도대체 안에 뭐가 있냐고 물었다. 우상열은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한명씩 올라가 보라고 했다. 우리는 정말 우상열보다 더 조심스럽게 올라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천둥보다 더 크게 번개보다 더 밝게, 그믐밤보다 어둡게 한나절 햇살보다 밝게 다가왔다. 이제껏 우리가 본 수십 편 영화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의 머릿속을 인두로 지져버리고 있었다. 발가벗은 남자와 여자의 신음소리와 서로의 탐닉이 가져다주는 신비와 황홀의 세계로 덜컥, 준비도 되지 않은 우리를 마주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열 살이었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새로운 세상이 현실로 다가왔다. 영사기를 들어낸 빈자리에 서로의 옷을 깔고 남녀가 뒤엉켜 있었다. 뒤통수만 보였지만 범호 같았다. 창문으로 통해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종종 마을 어귀에서 개들의 교미를 보면서 키득거린 적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