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도시락을 요란하게 달그락 거리면서 학교를 파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당산나무까지 뛰어 왔을 때였다. 동네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원을 그리고 있었다. 얼른 허기진 배를, 꽁보리밥에 고추장을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컸지만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 장면이 있었다. 누렁이와 검둥이가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붙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 본 기괴한 장면이었지만 왠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우상열이 은밀하게 우리 곁에 바짝 붙어 약간 풀어진 목소리로 헤프게 웃고 있었다. -난 이미 몇 번 봤지만 너희들은 처음이지? 누렁이 검둥이 땡잡은 날이야. -너무 힘들어 하는데 뭐가 땡잡은 거야? 우상열은 이빨사이로 침을 칙 뱉어내며 가소롭게 쳐다봤다.-보면 몰라? 빠지지 않지만 행복한 신음을 지르고 있잖아. 너희들은 당연히 모르겠지만 행복할 때는 자연히 저런 신음이 튀어나오는 거야. 뒷전에 있던 명수가 끼어들었다.-그건 맞아. 울 엄마 아빠도 그런 것 같았어. 이번에는 우리를 죄다 불러 모아서 최대한 팔을 뻗어 어깨동무 자세로 우상열이 눈을 번뜩이며 얘기했다. -고추에 털 나면 누구나 하게 되겠지만 조심해야 될 것은 저렇게 빠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앞산에 올라가서 하다가 빠지지 않아서 둘이 붙어있는 채로 떨어져 죽은 거 알아? 몰라? 그러고 보니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산위로 올라가 사랑을 나누다가, 산짐승이 나타나 놀라는 바람에 빠지지 않았다. 서로 걱정하다가 산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둘이 한 몸으로 산에 묻혔다고 동네 형이 눌린 자국이 있는 풀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로 여기’란 증거를 보여준 적 있었다. 주위 분위기가 왠지 그렇게 믿으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동네형의 희번덕한 눈매와 친구들의 끄덕거리는 고개로서 충분했다.-그럴 때 빠지지 않는다고 당황하지 마. 그럴 수 있어. 잘 봐둬. 이럴 때는 뜨겁게 하거나 차갑게 하는,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돼. 횃불을 갖다 대거나 찬물을 끼얹으면 쇼부가 나거든. 저기 봐. 택일이 아제가 물동이를 들고 오네. 오랜 시간 엉덩이를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 고역인데, 꽉 물려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했다. 물이 가득 담긴 물동이가 누렁이 검둥이 엉덩이 위에서 번쩍 올라가더니 곧 아래로 쏟아졌다. 신기하게도 다리에 힘이 풀린 모습으로 낑낑거리며 떨어졌다. 당산나무 둘레에 모였던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면서 오늘 동네가 들썩들썩 할 거라며 음탕하게 쑥덕거렸다. 나는 어른이 되었어도 교미는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열 살의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씩 올라선 영사실 계단에서 훔쳐본, 교미장면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우상열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저러다 안 빠지면 큰일이니까 우리도 물을 끼얹어주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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