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연기력이 부족한 몇 명이 불안하긴 했지만, 우상열이 선두에서 범호와 맞섰다. -틀림없이 물을 끼얹은 놈이 이 안에 있지?-무슨 물요? 아저씨, 우리는 뒤 논둑에서 놀다가 부르는 소리에 모였는데요. 천연덕스럽게 받아치는 우상열은 역시 대장다운 면모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작 열 살의 나이에 저렇게 거짓말을 잘해도 될까 하는 거리감도 생겨났다. 어쨌든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한마음이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우상열을 응원하고 있었다. -잘 봐! 비도 안 오는데 젖어 있는 내 모습이 웃기지? 틀림없이 이 중 한 놈, 아니면 두 놈, 아니면 전부 힘을 합쳐서 물을 끼얹었지? 지금이라도 자수하여 광명 찾으면 용서해 줄 것이고, 아니면 나올 때까지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매타작이 있을 줄 알아! 자수한다고 용서해주지 않을 범호를 이미 알고 있지만,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의 엉덩이는 인정사정없이 매타작할 범호도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우리는 우상열의 얼굴을 동시에 쳐다봤다. 시작도 니가 했으니 끝도 니가 하라는 무언의 요청이었다. 허나 쉽사리 패를 까보이는 우상열이 아니었다. -범호아저씨, 아까 윗마을 광태아저씨가 달아나는 것 봤는데요.-뭐! 광태가? 한 때 광태 꼬붕으로 따라다닌 범호의 전력을 우상열은 꾀고 있었다. 임시 땜방 식으로 슬쩍 넘어가려고 갖다 부친 것이 광태였다. 광태의 이름을 듣는 순간 범호의 표정이 많이 일그러졌다. 우리는 우상열이 발휘한 기지에 놀랐고, 여전히 광태를 두려워하는 범호를 알았다. 광태는 영천 전 지역을 아우르는 싸움꾼이었다. 신기에 가까운 그의 싸움을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실력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했다. 싸움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며 행사장에서도 내빈으로 대우 받을 만큼 각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를 터면서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었다. 심부름센터의 간판을 내건 사무실 소장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밑에서 한동안 범호가 있었다는 것을 우상열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마하려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광태는 결코 창문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물이나 붓고 도망갈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우리는 눈짓으로 그건 아니잖아, 라고 신호를 보냈다. 우상열도 범호의 눈치를 살피며 잘못 본건가, 하고 한 발 뒤로 빼려는데 범호가 심각하게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형님이 생활이 궁해졌나. 이 좁은 단포에 왜 왔지? 그런대로 위기 모면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엿보이는 듯도 했다. 갑자기 골목에서, 평상시엔 풀어진 머리를 발끈 동여맨 화자가 두 팔을 걷어 부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우리 앞에 섰다. -내가 밑에 깔려 다 봤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너희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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