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을 담기위한 적당한 장소로 광대봉과 마이산을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는 몇 개의 봉오리가 낙점 되었지만, 진안 정수장 산중턱으로 잡았다. 요즘 사진하는 사람들에게 오르기 좋고, 괜히 일출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 입소문이 심심찮게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남원에 도착해 여장을 푼 부산 일행 중 한명이 새벽 다섯 시에 급히 오느라 모텔에 삼각대를 두고 왔다고 투덜거렸다. 어쩌면 삼각대 없이 약간 흔들리는 속에 일출을 담으면 ‘물건’이 된다고 놀림 반, 위로 반으로 누군가 말을 던졌다. 그럴 듯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웃음이 부산 무리 속에 번졌다. 또 다른 일행 중에서 하얀 이빨을 내보이며, 캔 맥주 따개를 땄다. 산길을 타고 오르는 새벽기운 사이로 절묘한 따개 음이 귓전에 남아 있었다. 이탈하려는 금속성의 스침과 손끝에 힘을 모은 우격다짐의 이별이, 서로를 품어주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빠각’ 소리쳤다. 그러자 그쪽 일행들은 캔 맥주 동아리처럼 너나없이 캔 맥주로 목을 축였다. 빠각, 빠각, 빠각. 이번엔 부산 무리가 막걸리로 응수를 했다. 가방 속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탓인지 마개를 열자 막걸리 거품이 작게 솟구쳤다. 치직거리며 세상 밖으로 나온 막걸리는 마치 램프 속 거인처럼 주인의 명령을 따를 듯 다소곳하게 잦아들고 있었다. 종이컵을 꺼내 일행에게 한잔씩 돌린 그가, 뒤처지지 않는 걸음으로 걷는 내게 잔을 건넸다. 약간은 난감했지만 두 손으로 종이컵을 받아 멋쩍게 웃었다. 그 웃음의 양만큼 술이 채워졌다. 빈 막걸리 플라스틱 병을 가방에 구겨 넣으며 잰걸음으로 따라붙은 그가, 간격을 줄이며 다가왔다. 새벽 산행 속에 만난 사람들은 통성명 대신 눈인사면 충분했다. 갑자기 선두에서 손사래를 치며 정지 신호가 전달되어왔다. 우리는 일제히 얼음이 되었다. 몇은 자세까지 낮춰가며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새벽 찬 기운이 스카이 콩콩처럼 콩콩 몰려 다니고 있었다. 겨울로 접어든 억새풀이 아련한 추억을 데려올 듯 두서없이 너풀거려 잠시 세상 밖으로 나온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우리의 정지신호 앞에는 아기 고라니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간이 만든 덫에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부러진 나뭇가지가 서로 엇갈리면서 자연스럽게 빠지면 옭죄도록 형태가 만들어져 있었다. 순한 눈망울이었지만 이미 지쳐 있었다. 놀라지 않게 두 사람만 다가가 구해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선두 두 사람을 지목했지만 평상시 짐승 털 알레르기가 있다며, 한 사람이 빠졌다. 그러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가기로 한, 한 사람마저 기권할 것처럼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었다. 어차피 산길을 막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급적 동작을 낮춰 피해가자는 의견에 힘을 실으려할 때 내가 나섰다. 선발된 선두의 한 사람과 전우처럼 몸을 낮춰 다가갔다. 억새풀에 닿는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까치발로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새벽과 어둠속 산길과 부엉이 울음과 밤벌레의 미묘한 움직임이 한 덩어리로 반죽되고 있었다. 여울져 들려오는 물소리 같은 구름과 안개 빛 산 그림자 사이로 지치고 두려움에 떨던 아기 고라니가 목쉰 울음을 토해 내었다. 묶인 다리의 고통보다 몇 배 강한 위험을 감지한 울음은 삶의 바닥을 긁어내고 있었다. 미숙한 우리의 손길을 합리화시키듯 서둘러 다가가 얽힌 나뭇가지를 헤쳐 아기 고라니를 빼내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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