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작된 마이산 꼭대기에 걸린 해는 가만히 빛을 그 아래로 배분하고 있었다. 모른 척 돌아서도 돌려 세울 목젖까지 차오르는 햇살과, 하늘을 깨우는 탱탱한 푸른 목숨들이 시작되고 나는 그 안에 무기수처럼 징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질 수 없다면 이미 고요를 분질러 놓은 일출에 안겨 포효하는 하루의 시작을, 빳빳이 고개를 들고 알릴 것이다. 억새풀이 답하고 졸린 산 그림자가 바람과 함께하는 내 곁은, 어쩌면 이리도 쿵쾅거리는 가슴만 있는가. 마이산은 저토록 덤덤히 일출을 정점으로 깨어나고 있는데, 이 예감으로 가장 좋은 각도에서 찰나의 순간을 붙잡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여기저기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고 셔터 누르는 소리가 신선하게 곳곳에서 들려왔다. 마치 삼각대를 받칠 자리를 미리부터 점찍어 둔 것처럼 자리다툼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충실한 모습은 매번 신기하게 느껴졌다. 각도의 욕심이 생길만 한데 운으로 맡기기도 하고, 선자리가 예술이라는 배려로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간혹 버티거나 고집을 피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한 컷의 욕심이라고 이해해주었다. 다행히 안개의 복병을 오늘은 만나지 않아서 좋았다. 막걸리 일행과 캔 맥주 일행이 섞여서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가 숨 막히는 일출이 시들해지자 각자의 무리로 찾아가고 있었다. 내가 멘 핫셀브라드 카메라에 장착된 광각줌렌즈에 관심을 보이던 캔 맥주 일행 중 한 명도 서둘러 떠나가고 약간 어색하고 민망하게 장비를 챙겼다. 보이는 산정은 급경사로 쉽게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듯 날카롭게 느껴졌다. 두 개의 봉우리가 치솟아 어디가 암마이봉인지 어디가 숫마이봉인지 알 수 없었지만 두 봉우리 모두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멀리서나마 정취에 젖어들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었다. 일출에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다가 하마터면 놓칠 뻔한, 시계추 같은 울림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도토리나무였다. 단풍이 끝날 무렵 마이산을 뒤덮은 도토리나무의 함성을 들어 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선배는 술에 절어 탁자의 귀퉁이에 머리를 묻었다. 곧 중심이 흔들려 와르르 탁자가 무너지고 빈 소주병과 양은 냄비 속 동태찌개가 엎질러져, 그런 선배를 목격하는 밤에 마이산 도토리나무를 들었다. 그 기억은 고스란히 가슴속 서랍에서 녹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녹이 벗겨지자 후줄근한 선배의, 그날의 기억과 마이산 도토리나무가 헐떡이며 교미하듯 선명하고 화려하게 다가왔다. 붉은 색감도 바래져, 진노랑으로 거듭난 반란과 아우성에 대한 맹렬하면서 통렬한 바람을 향한 몸짓이 그대로 온산을 뒤덮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얽히고설킨 그러면서 산을 쪼개듯 날선 이파리와 차가운 혈관을 두드려 깨우는 내 먹빛 시간아. 밤새 술마셔주는 여자와 살고 싶었던 내 젊은 날은 어디 갔는가. 나는 무작정 셔터를 눌렀다. 무엇을 겨냥한 실체도 없었고 무엇을 향한 목표도 없었다. 다만 거대한 힘에 의해, 버티지 못할 강렬한 서로의 눈이 맞아 돌아오지 않아도 될 저 순간을 담고 싶었다. 온통 새카만 그래도 후회 없을, 머리 절레절레 흔들면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순간을 담기위해 셔터를 눌렀다. 빗물 쪼아 먹은 산비둘기가 진안정수장 잣나무를 찾아 날아와 앉았다. 휴게실에는 아직 하산하지 않은 막걸리 일행이 보였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2 03:27:50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