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 중국 고대 마구에 관해서 계속해서 알아보자. 지난 호에서 본 내용은 안장이 높아지고 등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등자에 대해서는 45회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있는데, 등자의 등장은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기마에 있어서 아주 큰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투루판 아스타나에서 출토된 진흙 말의 채색도에 의하면, 안장에 비단으로 덮어 비단장식으로 되었다. 문헌을 보면, 당나라 은장, 탈석장, 오칠장, 보세병금장 등 다양하다. (《唐会要》권31,32) 또 북조 가죽 안장은 얇아, 당나라 때 안장 밑에 언치(鞯)를 설치하였다. 탑승자가 안정되고 두툼함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의 등 안장 손상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언치(鞯)는 오늘날의 안장 요로 불려지고, 일반적으로 융단으로 만들어지는데, 당나라 사람들도 이를 "안장 밑의 펠트(鞍下毡替)"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나라 사람들은 "호피가 언치(鞯)가 된다"를 더욱 더 중히 여기자, 아스타나 진흙말의 언치(鞯)에 선명한 호피무늬가 그려졌다. 장니에 관해서는, 당나라 시대 전과 비교해 약간 간소화되어, 일반적으로 매우 길게 늘어진 경질 대장니를 늘어뜨릴 필요가 없었다. 이때 대부분 장니의 상단은 언치 아래에 덮고, 말의 배를 넘지 못한다. 금제를 최고로 삼았으니, 당시(唐诗)에는 금으로 만든 장니를 읊는 시구가 적지 않았다. 안장을 갖추고 잠시 타지 않으면 안장 위에 안장보를 씌웁니다. 안장보(鞍袱)는 일명 안장수건(鞍帕)이라고 한다. 두보시에 `은안장이 나파 (罗帕)를 덮었다.(银鞍却覆香罗帕)`, 왕건시에 `황색 수건 덮개 안장이 말을 보여주었다.(黄帕盖鞍呈过马)`. 모두 이 물건을 가리킨다.
안장, 언치를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말의 가슴, 배, 둔부로 띠를 끌어내어 매듭을 매야 한다. 말안장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말 배의 띠를 말뱃대끈(韅)이라고 하고, 통칭 마복대(马腹带)라고 한다. 안장 앞에서 말의 가슴을 두르는 띠를 판흉(攀胸)이라고 하고, 구억대(钩臆带)라고도 한다. 안장 뒤에서 말둔부를 두르는 띠를 추(鞦, 밀치)라고 한다. 이 띠에 장식된 것은 본명이 마가(马珂)로, 당나라에는 행엽(杏叶, 살구잎)이라고 많이 불렸다. 당나라의 행엽은 스타일이 아주 많은데, 권초(卷草, 중국 전통문양의 하나), 보상화(宝相花, 중국 전통문양의 하나) 등 식물 문양으로 꾸며진 것 외에, 또한 난새(鸾鸟, 봉황과 비슷한 전설상의 영조), 원앙, 기린, 사자 등의 동물 도형을 주조한 것이 있고, 그 중에는 조형이 뛰어난 공예품도 매우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