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 중국 고대 마구에 관해서 계속해서 알아보자. 중국 고대 마구에 관한 마지막 부분인 안장과 편자의 내용이다. 안장은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말을 탈 수 있게 해 준 의자와 같은 작용을 하여 사람들이 말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올라타서 달리거나 일을 할 수 있게 했던 물건이다. 초기의 안장은 앞뒤가 아주 높게 만들어서 좀 더 안정적으로 앉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안장 부분이야말로 말에게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편자에 관한 내용은 46회에서 자세하게 살펴보았는데, 말의 신발이다. 달리는 것이 주업무인 말에게 튼튼한 신발이야말로 천사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과 같은 것이다. 좀더 편안한 편자를 통해 말은 그야말로 더 빠르게 달리게 된 것이다. 요나라 안구(鞍具) 내몽고 자오우다멍 적봉시 부마 초굴렬(肖屈列) 묘(응력 9년, 959년)와 철리목맹(哲里木盟) 내만기(奈曼旗) 청룡산 (青龙山) 진국(陈国) 공주묘(개태 7년, 1018년)와 함께 나온 것이 가장 눈에 띈다. 부마묘(驸马墓) 중에서 출토된 황금의 은·동마구는 400점에 가깝지만, 말안장의 목질 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 반면 진국 공주묘의 은장 목안장은 기본적으로 온전하여 우루무치 염호2호묘(乌鲁木齐盐湖2号墓)의 안장과 비슷하고, 마치 당나라와 같다. 다른 것은 요나라는 북조를 계승했고, 또 앞·뒤 안장 다리에 금속 장식을 씌웠다. 단지 진국 공주묘의 앞안장 다리장식은 턱궁형이고, 뒷안장 다리장식은 나무 안장 뒤쪽의 기울어진 부분 아래의 테두리이다. 두 다리와 수직으로 안장을 두르는 전,후 안장 다리장식은 모두 원래와 완전히 다르다. 이 밖에도 이 마구에는 장식 끈, 가슴 끈, 소대, 밀치 끈에 달린 각종 장식품이 185점이나 된다. 원나라 말안장의 스타일은 요(辽)대와 비슷한데, 네이멍구 석림곽릉맹(锡林郭勒盟)에 양황기(镶黄旗) 오란현(乌兰) 도랑과 같다. 앞, 뒷 안장다리에 포양(包镶)이 있을 뿐 아니라, 앞, 뒤 안장 위에 올라가는 것도 있고 게다가 사용한 것이 금엽으로 더욱 호화롭게 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마구 중의 중요한 부품인 편자가 중국의 출현은 원대보다 훨씬 이르다는 것이다. 이 물건은 서양에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인들이 발굽을 사용한 것이 비교적 보편적이었는데, 중국은 당나라 때까지 줄곧 해도 말 발굽을 수선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두보가 시에서, “청총마(骢马)가 발굽을 새로 파니, 은안장이 좋게 한다. (骢马新凿蹄,银鞍被来好)”. 그것을 착(凿, 끌)이라고 하는데, 바로 고친다는 뜻이다. 송나라 조여적(赵汝适, 1170~1231年)이《제번지(诸蕃志)》에서 대식국(大食国, 중국 당나라 때의 사라센 제국을 이르던 말)의 말을 기록하고 이미 거론했다. "그 말은 키가 일곱 자이고, 쇠로 신발을 만든다. (其马高七尺,用铁为鞋)" 서아시아 사람들이 중국의 말등자를 보고, 중국인과 서아시아의 편자를 보았을 때, 쌍방이 똑같이 신기해했는데, 같은 비유이다. 예는 서로 왕래하면서 교제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고 할 만하다. 이렇게 7회에 걸쳐서 중국 고대 마구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말과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부터 말에 관한 마구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발전하였던 것이다. 마구가 생겨난 원인은 말을 꾸미기 위한 장식이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생겼거나 이용에 편리하게 하기 위해 생겼다거나 하였다. 하지만, 말을 장식하고 마구를 만들었던 이유는 말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 출처 : 中国人民革命军事博物馆(http://www.jb.mil.cn/yjcz_2226/gbtg/201707/t20170720_35591.html)** 사진 제공 : baidu.com** 필자 메이칭의 카페 : http://cafe.naver.com/orangewo8x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