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동방문화(東方文化)의 성기(盛期)를 말할 땐 반드시 근고(近古) 수 백 년간을 일컫는 것이니, 서경(西京) 정관(貞觀) 중국 당 태종 때의 연호의 위 에다 올려두어도 부끄럽지 않고자 할 것이다. 이제 그 계책(謨猷)과 형식(制作)을 보면 아름답지(雅美) 않음이 없지만, 말세(末流)의 폐단에 이르게 되면, 학자(學者)들의 상당수는 밖(外)에다 힘을 쓰되 안(內)은 성글며, 멂(遠)은 좋아하되 가까움(近)은 업신여기는데, (이러한 현상은)더욱 역사를 다스림(治史)에 있어서 더 심하다. 이러한 이유로 시골 사당의 동자(童子)들은 입으로 능히 당우(唐虞) 중국 선진시대의 당나라와 하나라. 당은 요임금의 치세이며 우는 순임금의 치세이니 고대 중국 성인이 다스리던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 3대(三代) 당우를 지나 하나라와 상(은)나라 그리고 주나라의 3대의 다스림은 말하고, 한나라와 당나라(漢唐)와 송나라와 명나라(宋明) 사람들의 융성함과 쇠약함(隆衰)과 사악하고 왜곡에 대하여 훤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헤아리기를 마치 눈으로 직접 봄과 같을 뿐만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정작)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와 그들이 밟고 있는 땅에 대해서는, 도리어 신라와 고려의 왕들이 누구이며 단군과 기자(檀箕)가 어느 시대 왕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까닭은 무었인가? 재주와 지혜가 저들에게 통달하였으니 이들에 대한 어두움은 아닐 것이고, (다만)진실로 밖에 힘을 쓰고 먼 것을 좋아하여 그리 된 것이리라. 이러한 이유로 학자들이 근래 자못 병든 날에 영천의 인사(人士)들이 군지(郡誌)라 부르는 것을 만들어 나에게 서문(序文)을 청한다. 영천은 영남의 큰 고을이다. 그 풍속은 순박하고 평이함을 숭상하며, 부로(父老)들은 질박하고 근실(質實)하며, 자제(子弟)들은 정성스럽고 부지런하였다. 나는 일찍이 이 고을의 산천(山川)의 아름다움을 관람하고 사이에 어진 선비들을 좆아 노닐면서 다시 인물들이 많음을 듣고 순박하고 평이하며 질실(質實)하고 정성되고 부지런함이 예로부터 있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듣고 본 바를 모아서 향토사(鄕土史) 한 권을 만들어 동호자(同好者 )들과 읽지만, 오히려 그것이 상세하고 모든 것을 다 싣지 못함을 한탄하였었는데, 이제 이 기록(誌)의 출간은 내가 미진하였던 것에 대하여 거진 다 하였을 것이다. 영천의 인사(人士)들이 나에게 이 책의 서문을 부탁한 까닭은 생각 컨대 혹 여기에 있지 않을까? 또한 고을의 기록(誌)은 나라의 역사(史)와도 같아, 비록 (규모의)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관계의 중(重)함은 진질로 다름이 없을 것이므로, 학자들로 하여금 이를 고찰하게 한다면, 인물(人物)의 성함과 쇠약함(盛衰). 풍속과 교화(風化)의 융성함과 쇠잔함(隆替) 또한 가히 얻음이 있으리니, (이를 밖으로)미룬다면 영천의 인사(人士)들은 가까움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안(內)을 성글게 하지 않을 것임을 알겠노라. 드디어 일찍이 역사에 대하여 논한 바를 기록하여 이것으로 서문으로 삼는다. 갑술(甲戌) 늦가을에 창산(昌山)의 조정환(曺正煥)이 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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