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를 집고 충(忠)을 다하여 국가를 반석같이 튼튼하게 이끌어 중흥의 기틀을 이룩함도 충신열사(忠臣烈士)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누란(累卵)의 위급에서 구출할 것을 목마름과 같이하여 죽음을 털끝에 비하고 자약여귀(自若如歸)함도 당당 충의지사(忠義之士)라. 한말(韓末) 국운이 경각에 달려있어 중록고관(重祿高官)들이 왜귀(倭鬼)의 주구(走狗)가 되고 하늘도 무색하게 황위를 범하는 귀축(鬼畜)의 왜종(倭種)이 독아(毒牙)로 이 강산을 삼키려할 때 재조제신(在朝諸臣)이 목숨을 빌고 무릎을 꿇어 이 땅에 수운(愁雲)을 자욱케 하니 충의기개지사(忠義氣槪之士)가 이때처럼 갈망되었던 때는 흔하지 않았으리라. 이때 동엄(東广)정 선생 부자분이 산남에 의진을 펴고 위로 임금의 지극하신 뜻을 받들고 가슴마다 충의구국(忠義救國)의 넋을 품어 불붙는 듯 왜귀(倭鬼)를 무찔러 적혼(敵魂)을 서늘케 함도 한 곳 두 곳이 아니요, 한 해 두 해가 아니라. 한 사람이 부름에 수천 명이 기뻐하며, 이 사람이 죽으매 저 사람이 이어 싸워 죽으니 그 수가 여러 천(千)이라. ~ (후략). 단기 4296년 癸卯(서기 1963) 4월 17일 산남의진기념사업회 부회장 노한용 지음. (산남의진유사 P648, 기념사업회 발문(跋文) 중에서)변경조(卞敬祚) 생존기간:미상 ~ 1908. 4.25 / 출생지:미상 / 운동계열:의병 / 훈격(:애국장(1995) 공적내용 : 경북 경주(慶州)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러일전쟁 직후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은 우리 민족에게 국망(國亡)의 위기를 절감하게 하였다. 국권강탈 행위인 을사늑약은 일제가 그간 은폐해 왔던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 양성운동으로 언론활동 · 종교활동 · 교육활동 · 학술활동 등을 통한 국민 계몽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이었다. 특히 의병운동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변경조는 이 같은 시기에 의병운동에 투신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8년 4월 17일 경북 경주에서 동료 의병들과 함께 일본군 경주수비대 제12중대 소속의 이른바 `의병토벌대`와 격전을 벌이던 중 피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4월 25일 박대중(朴大重) · 유원수(柳元守) 등 동료 의병들과 합세하여 적진에서 탈출 투쟁을 전개하던 중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註·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10집 470·471면 손수용(孫秀用) 생존기간:1883. 9.29 ~ 1952. 5.26 / 출생지:경북 영일 / 운동계열:의병 / 훈격:애국장(1990) 공적내용 : 경상북도 영일(迎日) 출신이다. 1907년 청하(淸河) · 의성(義城) 등지의 의병장 이석이(李石伊) 휘하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1월 15일 의병장 이석이와 함께 동지 7명과 더불어 청하군 죽남면 두마리(淸河郡 竹南面 斗麻里)에 거주하는 박수복(朴壽復) · 김운집(金雲集) · 정두정(鄭斗定)의 가택을 습격, 권총으로 위협하여 엽전 10관 200문을 모금하여 군자금으로 조달하였다. 1909년 1월 3일 이 일이 탄로나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2월 10일 대구지방 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죄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고 상고하였으나, 3월 30일 대구공소원(大邱控訴院)에서 기각당하고 4월 27일 대심원(大審院)에서 기각되어 원심대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 11월 26일 소위 칙령 제3호에 의하여 징역 5년형으로 변경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註·대구지방재판소 판결문 (1909. 2. 10, 3. 30,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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