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휴게소에 들렸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콩나물 국밥으로 통일하자던 딸애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앉아있는 내게 국밥을 가져왔다. 배가 고픈지 아픈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숟가락을 손에 쥐어주는, 딸애에게 보란 듯이 몇 번 입으로 가져갔다. 창밖은 오월 햇살이 또랑또랑했다. 경주 하늘마루 화장장에서 본 햇살 그대로였다. 아내도 이 햇살을 지금 보고 있을까. 그랬다면 양미간을 찡그리거나, 손차양을 하는 아내의 움직임을 쉽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미간에 주름살이 생긴다고 말하면, 내 관심이 싫지 않은 듯 혀로 메롱 해보이던 아내가, 한줌 유골로 운구차에 실려 있다는 것이 인생무상으로 다가왔다. 하늘마루 화장장에 도착했던 시간은 여덟시 경이었다. 고지대라서 아직 걷히지 않은 안개와 찬바람이 한 겹으로 남아있었지만, 유골함을 받아들였을 때는 말끔하게 오월이 주는 기운으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엇박자로, 내내 안개와 찬바람의 무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 죽음이 주는 마음속 무게의 공간과,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에 망설이지 않고 들어찬 안개와 찬바람은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시무룩하게 다가왔다. 산 자의 몫이라고 하기엔, 너무 살갑게 다가와 제집처럼 자리 잡는 것이 두려웠다. 안개와 찬바람은 곧 나를 지배할 것이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침몰할 것이다. 하늘마루 화장장에서부터 빈 가슴의 과녁을 향했던, 안개와 찬바람의 뾰족한 화살은 내게 명중되어 이토록 목줄처럼 따라온단 말인가. 아내의 빈자리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한 울림이었다. 머리가 우지끈 아파왔다. 시야가 흐리고 한기를 느꼈다. 서둘러 숟가락을 놓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딸애의 근심어린 시선이 따라왔다. 주차된 차들도 거리두기를 하는지 띄엄띄엄 세워져 있었다. 아내처럼 햇살 속에서 양미간을, 손차양을 번갈아 하면서 작고 동글동글한 목소리를 채집하고 싶었다. 당신도 그러잖아요. 날 놀리려고 그러고 있죠? 아내의 목소리는 언제나 작고 동글동글했다. 아빠, 뭐하세요? 순간 깜짝 놀랐지만 이내 딸애라는 것을 감지했다. 운구차에 오르면서 작고 동글동글한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딸애의 목소리와 겹쳐져 아내의 마지막 목소리로 찾아온 듯, 차창 가에서 계속 이명에 시달렸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운구차는 팔공산 도립공원내로 들어섰다.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 은해사가 보였다. 빽빽한 소나무가 위용을 자랑하며 도열해있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딸애는 수목장 관계자에게 이미 예약을 해두었기에, 순조롭게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은해사 절 뒤편에 있는 수목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세월이 지나면 유골이 자연 분해되는 방식이라서, 나중에 혹시 이장계획이 있다면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관계자의 첨언도 들었다. 딸애는 그 대목에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네 엄마 곁에 묻힐 건데, 그랬으면 좋겠다. 서로의 경계선도 없이 어우러지고, 뒤섞이다보면 자연스럽게 한 몸이 되지 않겠니? 세월이 흐르다보면 조금 일찍 묻히고 늦게 묻힌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어느 시점이 틀림없이 올 것이다. 묻힌 유골은 기름진 토양이 되고 나무의 뿌리가 되고 잎이 되고 솔방울이 된다면, 그만큼 삶과 죽음은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한 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절차를 끝낸 딸애가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자연 분해가 잘되는 황토 유골함에 제 어미를 옮겨 담았다. 마지막 뼛가루를 내게 건네주었다. 장갑을 끼지 않고 눈물이 흔드는 몸짓으로 천천히 유골함을 채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