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는 뼛가루 입자는 순간적인 정전기에 놀라듯, 찌쟁찌쟁 파열음을 느꼈다. 가난했던 한사람 삶이 가냘프게 눈물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아내의 웃음과 몸짓과 체온과 체취는 그대로인데, 죽어서 찾아가라고 유골이 이정표처럼 손 그물에 담겼다. 소중하게 한 톨 가루까지 탈탈 털어 황토 유골함에 옮겨 담았을 때, 새삼 힘들게 버텨온 우리의 인생이 부질없게 다가왔다. 소나무 밑을 파서 묻었다. 얼기설기 뻗어있는 뿌리의 결을 살리면서 적당한 공간에 유골함을 묻고 흙으로 덮었다. 삶의 수레바퀴가 덜컹 거리면서 내 가슴 위를 지나가는 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였다. 그 선명한 자국도 가슴위에서 꿈틀대는 것을 확인하였다. 내 몸속에 새겨진 아내를 부둥켜안으면서 길고 진한 속울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왜 나 같은 남자를 만나서 복도 지지리도 없게 짧은 생을 마감했는가. 아내여! 미안하다. 그래서 미안하고 이래서 미안할 뿐이다. 다음 생은 넉넉한 남자를 만나 나날이 행복에 겨운 비명으로 채워지기를. 아니면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태어난 내게, 같은 무능, 같은 옹졸함으로 힘들게 해도 결코 원망하지 않으리니. 오는 길에 산채비빔밥 식당에 들렸다. 은해사에서 절밥을 권했지만, 식사시간과 분위기가 애매하여 그대로 내려오다가, 딸애의 제의로 차를 세웠다. 장거리 운전으로 누적된 기사의 피로를 감안한 배려이기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식당의 볼거리는 마당이 훤하게 쳐 둔 두꺼운 유리 칸막이였다. 족히 백여 개 되는 장독대의 위용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한 배려였다. 유리 칸막이가 주는 신뢰감으로 울타리를 쳐두었지만, 안내를 하는 사장은 약간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간간히 새들이 부딪혀 뇌진탕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투명하면서 반사되는 개방된 공간으로 인식하고 그대로 돌진한다고 했다. 덧붙이길 황룡사 벽에 그린 솔거의 노송도도 부딪혀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는데, 혹시 그 부분만 반질반질해서 개방된 공간으로 인식한 것은 아닌지, 과학적인 근거하에서 혼자의 생각이라며 너털웃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장독대는 고추장과 된장을 오래 묵은 순서대로 일목요원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주인장의 고집과 손맛을 단번에 짐작이 되었다. 사위는 분위기 전환도 할 겸 필요 이상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장모님 뵈러 올 때마다 산채 비빔밥까지 덤으로 생각나겠는데요. 일행 중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착잡하게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았다. 빼곡한 소나무 숲길 사이로 은해사의 풍경이 흔들거렸다. 묘했다. 어떻게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는 풍경의 자리를 허락했다 말인가. 처마 끝에 매달려 강을 흠모하는 붕어의 흔들리는 모습을 내가 선 자리에서, 낚은 것은 아내의 마음이 닿은 것이리라. 아내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그 소박한 꿈을 내게 얘기 했을 때, 처음으로 분명한 자신감에 차있었다. 현모양처쯤이야 당연히 챙겨드려야지요. 그렇지만 아내를 늘 불안하게 했다. 진득하게 머물러있지 못하고 이 직장 저 직장을 옮겨 다니기도 했다. 풍경은 골짜기와 산마루를 넘나드는 바람을 타고 짐짓 소나무 사이사이를 피해 아내의 안부를 전해주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딸애가 내 손을 꼬옥 쥐었다. 아빠, 식사하세요. 좋은 곳에 묻힌 엄마 걱정은 이제 하지 말고, 살아있는 아빠 걱정할 때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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