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부터는 중국과 한혈마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보고 있다. 중국 천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한혈마는 예부터 명마로 대표되는 말이다. 한무제(漢武帝)의 한혈마를 얻으려고 했던 이야기로 이번 호를 시작하려고 한다. 한혈마(漢血馬)를 뺏는 첫 전쟁이 기원전 104년에 발생했다. 기습 공격에 화가 난 한무제는 이광리(李廣利)를 보내 첫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다. 하지만 대완국까지는 너무나 먼 길이라 첫 전쟁에서 한나라는 제대로 전쟁을 치르지도 못하고 돌아오게 되는데, 돈황(敦煌)으로 돌아온 사람과 말은 단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고 3년 후 이광리(李廣利)가 다시 원정을 통솔해서 병 6만, 말 3만필, 소 10만두를 이끌고 두 상마전문가를 데리고 대완국으로 갔다. 이때 한나라의 대단한 기세에 기가 죽은 대완국은 바로 평화담판을 하기를 요청했고 한나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한군이 스스로 말을 선택하게 허락하고 이후 대완국이 매년 한나라에 좋은 말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한군은 좋은 말 수십필, 중등 이하 말 3000필을 선택했다. 대완국은 아주 먼 곳이라 돈황(敦煌)의 옥문관에 도달하니 한혈마 1000필만 남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한혈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한 예이다. 한혈보마는 보통 말과 비교해서 인내력이 있고 하루에 1번만 물을 먹고 사막 중 긴 여정이나 힘든 과정에 적당하며 만약 평지에서 뛰게 되면 1000미터를 단지 1분 7초쯤밖에 안 걸린다고 한다. 한혈마 이외에 중국 보마(寶馬)가 만들어낸 마문화는 아주 다양하고 오랜 역사를 가지는데, 용마, 준마, 백마, 전마 등과 관련이 있다. 용마(龍馬)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용마정신(龍馬精神)인데, 낙양용마부도사(洛阳龙马负图寺, 하남(河南)성 낙양(洛阳)시에 있는 여유경구 AAA등급의 중국 국가공인 관광지)가 있다. 용마와 팔괘(八卦)는 아주 밀접하며, 용마는 즉 지마(地马)이다.《주례(周礼·夏宫·廋人)》에 기록되어 있는데, "8척 이상을 용이라고 하고, 7척 이상을 래(騋, 큰말 래)라고 하고, 6척 이상을 말이라고 한다. (马八尺以上为龙, 七尺以上为騋, 六尺以上为马)", 천상의 용은 지상의 말과 대응되는 것이며, 그래서 둘을 함께 “용마(龍馬)”라고 표현한다. 중국의 마문화 중 준마(駿馬) 역시 내력이 있다. 이상은(李商隐)이 시에서 말하기를, "팔준이 하루에 삼만리를 가는데, 목왕은 어째서 다시 돌아오지 않나? (八骏日行三万里,穆王何事不重来?)" 주목왕(周穆王)은 천성이 궁생활을 좋아하지 않고 여행을 좋아해서, 여덟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서쪽의 곤륜으로 여행하면서 서왕모와 요지(瑶池, 지금의 위구르지역, 신선이 있다는 곳, 선경(仙境), 전설에서 서왕모(西王母)가 살았다는 곳)에서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술을 마셨다. 주목왕은 고대 첫 번째 여행가였고 그는 팔준마를 타고 천하를 주유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준마도 여행과 관계가 밀접하다. 역사상 준마를 타고 천하를 유람하는 효시를 열었다. 그래서 후인들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는 팔준도(周穆王八骏图)가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 사진 제공 : baidu.com** 필자 메이칭의 카페 : http://cafe.naver.com/orangewo8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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